특집 우리에게 영어는 무엇인가
아체베와 응구기
영어제국주의와 탈식민적 저항의 가능성
이경원1)
. 탈식민인가 신식민인가
우리 사회가 IMF라는 미증유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을 무렵, 국내 일간지와 인터넷에서 영어 공용화를 둘러싸고 열띤 공방이 벌어진 적이 있다. 어느 소설가가 불씨를 지핀 이 논쟁은 영어의 의사소통적 기능을 넘어서서 영어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이 논쟁은 한국의 지식사회에 잠재하는 전통과 근대성 혹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긴장관계를 다시 표면화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한 논쟁은 한국 특유의 현상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영어 공용화 문제는 미국 중심적 세계질서에 속한 비영어권 국가들의 공통된 고민거리이다. 특히 제3세계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문제는 산뜻한 해결책을 찾기 힘든 일종의 딜레마이다. 그것은 한국을 포함한 오늘의 제3세계가 탈식민과 신식민을 동시에 경험해야 하는 시대적 모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으로는 식민지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구 제국주의의 헤게모니가 이전보다 더 교묘하게 제3세계 사회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구조의 한가운데에 바로 영어가 놓여 있다. 세계화가 곧 미국화를 뜻하는 상황에서 영어는 미국의 경제적·문화적 헤게모니를 재생산하고 ‘중심부’와 ‘주변부’의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매개하는 가장 제국주의적인 언어이다. 하지만 ‘근대세계체제’의 바깥에 선다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우리에게 영어는 불가피한 현실이자 불가결한 생존수단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영어는 제3세계가 근대성의 기원이 아니라 이식이고 모방임을 확인시켜주는 서글픈 거울이면서 동시에 서구가 그려놓은 근대성의 미로를 뒤따라가는 데 필요한 지도와도 같다. 따라서 영어는 완전한 거부 고립과 완전한 동화 예속의 양극단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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