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개토대왕비의 진실은 무엇인가
徐 榮 洙(단국대 역사학과)
. 머리말-廣開土大王碑의 역사적 의의
歷史란 과거의 발자취를 더듬는 것이긴 하지만 단순히 과거로서만의 의미를 지닐 때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 부르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속에 생생히 살아 있고 나아가 우리들의 미래를 밝혀 줄 수 있는 의미를 지닐 때 우리는 그 것을 진정한 역사라 이름한다.
민족사의 영광을 위하여 명멸하였던 숱한 인물도 이러한 성격을 지닐 때 우리는 그들에게 역사적 인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 역사의 태동기를 지나 뚜렷한 실체로서 부각되는 인물로 廣開土大王을 들 수 있다.
高句麗의 정복국가로서의 성장과정 중에서 廣開土大王代는 高句麗史를 구획하는 영광의 시대라 할 것이며, 民族史에 있어서는 격동하는 동아의 정세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統一秩序의 구축에 부심하던 전환기라 할 것이다.
따라서, 高句麗史 연구에 있어서나 三國을 중심으로 한 東亞의 교섭사연구에 있어 이 시기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보다 부각되어야 할 것이며, 大王의 훈적을 전하는 廣開土大王碑도 자연 이러한 시각에서 보다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陵碑가 재발견된 이후 그 연구는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고대사의 발전과정을 해명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 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陵碑는 參謨本部를 비롯한 日本帝國主義官學에 의해 `任那日本府`라는 허구를 토대로 한 古代 日本의 한반도 진출을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로서 변조 제시되었던 까닭에, 이후 근 1세기동안 陵碑硏究는 고구려사를 해명하였다기보다는 古代 韓日關係의 주도권 논쟁을 둘러 싼 공방으로 韓日學界의 최대 쟁점이 되어왔다.
陵碑의 변조와 왜곡은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나 망언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인의 식민지사관에 입각한 한국사 왜곡의 출발점이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최근 침묵을 지키고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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