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정권의 출범
가. 김일성의 사망과 유훈통치
1994년 7월 8일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사망하였다. 북한 당국은 사망 34시간 만인 1994년 7월 9일 12시 라디오 및 텔레비전 ‘특별방송’을 통하여 이 사실을 발표하면서 ‘의학적 결론서’를 첨부, 사망원인에 대해 “겹쌓이는 헌신적인 과로로 하여 1994년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었다. 즉시 모든 치료를 한 후에도 불구하고 심장쇼크가 증악되어 1994년 7월 8일 2시에 사망하시었다”고 발표하고, “7월 9일에 행한 병리해부 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인되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사망 11일 후인 7월 19일 영결식을 갖고 김일성의 시신을 과거 소련의 레닌, 중국의 모택동의 경우와 같이 미이라 형태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 안치하였다. 이로써 해방 후 49년간 계속되어 온 김일성 통치시대가 막을 내렸다.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김정일이 곧바로 김일성의 공식 직책들을 승계 받으리라고 보았던 관측들과는 달리 김정일은 3년이 넘는 기간동안 아무런 직책도 승계 받지 않았으며, 단지 최고사령관 명의로 김일성의 유훈1) 만을 내세우며2)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할 뿐이었다.3) 이로써 북한에는 노동당 총비서와 주석 등 ‘당과 국가’를 대표하는 직책이 오랜 기간 공석인 채 남아있는 이상한 현상이 빚어졌다.
이와 같은 김정일의 태도는 그의 등장 배경의 한계 및 가부장제적 정치문화와 함께 경제난을 비롯하여 북한이 당면하고 있던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체제는 김일성이 보유했던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그대로 승계 받은 후계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의 통치권의 정당성은 자신의 통치능력 보다는 김일성의 카리스마로부터 유래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국가를 ‘사회주의 대가정’으로 김일성을 ‘어버이’로 부르는 등 가부장적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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