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은 누가 그었나
도진순교수(창원대 사학과, 민족통일연구소연구위원)
미, 소의 배후에 일본의 공작이 있었다 38선은 도대체 누가 그었는가. 흔히 냉전의 양진영인 미, 소 양군이 진주하면서 자연스레 그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뿐일까. 이에 대해 정력적인 연구활동을 펴고 있는 소장 역사학자 도진순 교수는 역사를 대할 때 거시담론만이 아닌 미시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38선 획정을 이런 시각으로 들여다볼 때 예상 외의 추악한 진상이 실체를 드러낸다. 이 글은 도진순 교수가 2000년 8월 27일 일본 도쿄 히도츠바시대학(一橋大學)에서 열린 ‘한일역사공동연구회’ 제3차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것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흔히 미소 냉전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이 완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불충분하다. 거대담론은 대개 관련 행위자의 구체적인 활동과 그 차이를 매몰시킬 뿐만 아니라, 종종 역사와의 단절을 야기하기도 한다. 더욱이 전후의 냉전체제가 전전의 식민체제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는 민족 문제가 관건적 의의를 지니는 아시아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며, 분단 한반도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Ժ선과 남북 분단은 미소 냉전체제의 산물이고, 전전 일제의 식민주의는 단지 그 역사적 배경에 불과했는가. 아니면 일본이 식민통치의 연장선상에서 한반도의 분단에 모종의 구체적인 변수로 작용하였는가. 일본ㆍ조선총독부ㆍ조선주둔군의 종전 구상과 공작을 살펴보면 이것이 규명된다.
일본의 ‘화평공작’과 조선 영유
𠍧년 1월 루스벨트와 처칠은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독일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연합국의 정책 목표로 결정하였으며, 그해 12월 카이로 회담에서 연합국(미ㆍ영ㆍ중)은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였다. 무조건 항복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조건부 항복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943년 초부터 일본은 다양한 ‘화평공작’을 통해 나름대로 유리한 조건의 종전을 모색해왔다. 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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