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2월 문화대혁명기, 주은래와 사인방의 암투 속에 전쟁을 대비, 군인들이 대형 방공호를 파기 시작하였다. 마왕퇴. 정확한 기록도 없이 그저 서한 시대 장사왕 유발, 혹은 그의 어머니 정희와 당희의 이희묘, 또는 오대 초나라 왕 마은의 무덤일 것이라는 속설만 전할 뿐 황량하게 방치된 조그만 구릉 위의 흙무더기 옆이었다. 지하궁전을 발견한 군인들은 혼비백산하였고, 이듬해 발굴 끝에 모든 것이 밝혀졌다. 피장자는 서한 장사국의 왕이 아닌 승상 대후라는 작위의 이창(2호묘), 그리고 그의 부인 신추(1호묘)와 그들의 아들(3호묘)등 모두 3기였다. 그의 아들이 묻힌 것은 B.C. 168년 2월이라는 확증된 기록도 함께 출토되었다. 무덤 안에는 3천 6백여 점의 온갖 유물이 손상되지 아니한 채로 넘쳐날 듯이 쌓여있었다. 견직물, 칠기, 목용, 명전, 죽간, 백서, 그림, 기구, 심지어 음식물과 곡식, 과일, 각종 씨앗 등, 새로운 세계로 이주하여 새 세상을 열어도 즉시 모든 산업과 활동이 가능할 만큼 다양하며 완벽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부인 신추의 시신이었다. 아홉겹의 비단에 싸인 키 154cm, 당시무게 34.3Kg, 50세의 여인. 숨을 멎은 즉시의 모습 그대로 2천여 년을 단 몇 초인 양 뛰어넘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발굴과 동시에 장사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중국에서 내로라 하는 단위의 학자 수백 명이 임무를 띠고 과학적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미 중국 천지에 놀라운 신화가 입으로 번져나고 있었다. “그 귀부인이 살아나 앉아 무어라 말을 했다더라.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북경에서 곽말약을 모셔와 대면을 시켰다. 곽말약은 그것이 2천년 전 한나라 때의 말이라 하였다. 곽말약이 면담을 하고 나서 그에게 사과를 주었더니 신기해 하며 받아먹었다더라.” 이리하여 구경꾼들이 박물관으로 몰려들어 결국 밤에 몰래 시신을 다른 의과대학으로 옮겨야 할 정도였다. 이처럼 현대판 전기를 만들어낸 이 귀부인. 정말 불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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