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헷세 『유리알 유희』하나의 음부에서 우주적 음악으로의 합일류수안무엇엔가로 잘려진 바위의 단면에 아카시아 나무들이 자라 무리를 이루었다. 흙속에 뿌리를 둔 다른 나무들이 위로 꼿꼿이 자라오르는 동안, 이 나무들은 실같은 흰 뿌리로 바위를 뚫어 엇비슷한 자세로 공중에 시퍼런 이파리를 매달고 있는 것이다. 나무가 흔들린다. 내 피부에는 거의 감각조차 되지 않는 바람결에 나무들은 흔들린다. 한옆으로 휘었다가 곧추섰다가 나무의 가지와 가지가 부딪치고 이파리와 이파리가 부딪쳐 탁탁 경쾌한 소리를 낸다. 춤추고 있는 것인가. 바닷속 해초들이 앞물결과 뒷물결이 이루어내는 화음의 세계에 도취되어 춤을 추듯 나무들, 그렇게 제 춤에 잠기어 있는 것인가. 그 음을 맛보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향기롭다. 달콤하다.이 순간 지상의 그 무엇이 내쉰 숨이든, 지금 내가 들이쉰 숨속에 섞이지 않은 숨은 없을 것이다. 이제 내 심장의 한가운데에 멈춰 있는 숨, 이것이 헷세가 말한 神인가 이윽고 나는 내 심장의 체온으로 따뜻해진 숨을 다른 것들에게로 내어준다.비구름 사이를 빠져나온 햇빛이 나무 위로 쏟아진다. 검푸르던 나무 이파리는 곧 연한 연두빛으로 변한다. 그러면서 나뭇잎은 그 이파리를 이루는 세세한 잎맥들, 그 그물망 속으로 돌아다니는 수액의 흐름을 보여준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듯 나는 손을 내밀어 나무 이파리를 잡는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 이파리의 겉표면일 뿐, 좀체로 그 내부는 잡혀지지 않는다.나는 지금 어떤 시각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도 결코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헤르만 헷세는 『유리알 유희』 첫부분에 쓴 어록을 통하여 세계의 내면을 音이라는 초월적 언어로써 설명하고자 했다. 그것은 마치 禪에서의 화두와도 같이 내게 다가왔다. 유리알 유희의 기록 가운데서 음악에 관하여―파이프 올갠의 내부는 모든 연주자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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