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25일로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다. 정권은 역사가 평가한다고 하지만 경제정책은 시장이 평가한다. 참여정부는 IT산업과 과학기술계에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그 열정은 뜨거웠다. IT839정책, 과기부총리제도, 과기혁신본부체제 등 파격적인 정책을 내놔도 시장은 냉정했다. 참여정부 5년은 ‘착근(着根)’의 시대다. 투명한 정부를 만들고, 과학기술과 IT 부문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려 했던 점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다만 국민과 기업이 ‘착근’의 수준보다 기대치가 높았다는 점을 몰랐다는 것이 안타깝다. 본지는 5회에 걸쳐 참여정부의 IT·과학기술·산업정책을 평가하기로 했다. ◇글 싣는 순서 <1>분배와 성장의 갈등 5년 <2>동북아 R&D 허브의 꿈 <3>이공계, 가기 싫다 <4>신성장동력인가, 거품인가 <5>통·방 융합, 너무 늦었다 참여정부는 ‘평균’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A’나 ‘B’학점은 후하고 ‘D’나 ‘F’는 너무 잔인하다. ‘노력은 했지만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뜻의 ‘C’학점이 노무현 정부의 성적표다. 5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4%를 기록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2007년 2만달러를 달성했다. 세계 경제성장률 5%에 비해 다소 처진 것이지만 OECD 국가 중에서는 상위권이다. 수치로 보면 우세하다. 참여정부 동안 우리의 경제 체질이 강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후한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 수준으로는 국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기업과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냉랭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이에 대해 ‘안전 위주의 성장’을 꾀한 것으로 평가했다. 참여정부의 화두는 ‘혁신’이었다. 정보통신·과학기술·중소기업 정책에서 혁신 바람은 대단했다. IT839 추진과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 중소기업 체질 강화 등 국가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IT산업 ‘역점’, 성과는 ‘글쎄’=참여정부는 IT산업의 글로벌 리더 도약을 위해 2003년 ‘IT신성장동력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2004년에는 국가 IT산업 정책 전반을 포괄하는 ‘IT839 전략’을 마련했다. 2006년에는 국내외 IT환경에 신속한 대응을 위해 IT839 전략을 컨버전스 기술 발전 추세에 맞춰 일부분을 통합한 u IT839로 업그레이드하면서 관련 SW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이 강화되는 성과를 올렸다. IT839 전략의 추진에 힘입어 와이브로와 DMB가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표준으로 채택되고 상용화하는 등 우리나라는 IT 추종국에서 신기술 선도국으로 급부상했다. 외형적으로 보면 IT는 우리 경제의 선도산업으로 정착했다. IT산업 부문의 생산은 2002년 186조원에서 2006년 248조원으로 증가했고 GDP에서 차지하는 IT산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2002년 11.1%에서 2006년에는 16.2%로 증가했다. IT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2003∼2006년 연평균 44.6%에 달했다. 2002년 571억달러였던 IT산업의 수출은 2005년 이후 3년 연속 1000억달러를 돌파(2007년 1251억달러)했다. 문제는 와이브로와 DMB 외에는 뚜렷한 성공 모델이 없었다는 것이다. IT839에서 내놓은 정책은 대부분 다른 부서와 중복되는 사업이었고 원천 핵심기술에 대한 개발이라기보다는 기존 기술 서비스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 것들이었다. 장성원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참여정부 초기 의욕적인 IT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책의 추진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지만 최근 들어 둔화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과기부, 부총리체제로 ‘격상’=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은 세계 각국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2004년 7월 민간이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정부는 간접 지원하는 이른바 국가기술혁신체계(NIS:National Innovation System)를 정비하고 과기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했다. 또 과학기술혁신본부 신설 등 행정체제도 개편했다. 제도개혁은 △과학기술행정체제 개편 △국가 R&D사업 예산조정배분 및 성과평가시스템 구축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조세지원제도 개선 △대덕R&D특구법 제정 △기술사제도 개선 △전문연구요원 복무기간 단축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출자총액제한 예외 △신기술인증제도 등에 의해 구체화됐다. 정부 R&D투자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했다. 2002년 6조원이었던 정부 R&D투자 규모는 10조원으로 확대됐다. 연평균 10.6%씩 증가한 것으로 정부 총지출 증가율(연평균 8.3%)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 같은 노력으로 OECD·EU 등 선진국으로부터 대표적인 국가혁신 사례로 손꼽히며 혁신을 주도하는 국가 이미지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문제는 과기혁신부총리제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처별 미시경제 전반을 컨트롤하겠다는 당초 계획과 달리, 각 부처의 반발로 형식에 그쳤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중소기업 체질 개선 주력=참여정부 5년은 중소기업 정책의 전환기였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정책을 통해 자금난 등 현안에 적시 대응하면서 중장기적 체질강화 방안(2004. 7)을 추진했다. 2005년 1월에는 중소기업 정책혁신 12개 과제를 확정,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골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 ‘영세 자영업자 대책’ ‘벤처 활성화 보완대책’ ‘중소기업 금융지원체계 개편방안’ 등이 잇따랐다. 참여정부 중소기업 정책의 특징은 단순한 보호 육성을 넘어 중소기업의 구조적 경쟁력 강화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과거 보호·지원 위주의 판로지원 제도도 시장 친화적이고 경쟁 촉진적인 제도로 개편했다. 정부 개입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한편 시장에서 벤처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기업의 성장 토양을 다지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 신용보증지원제도의 대대적 개편, 자영업자 대책 등이 좋은 예다. 하지만 기업의 실물경제는 좋지 않았다. IT839에 기댄 국내 중소기업은 IPTV사업 지연, 홈네트워크산업 및 텔레매틱스, 로봇관련 서비스가 지연되면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기술은 좋았지만 시장이 확보되지 않아 참여정부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중소기업이 많았다. 기업이 성장하고 버틸 동력인 ‘시장’을 열어주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었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
◆컨버전스 흐름 정부 대응 미흡 2003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산업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융합(컨버전스)’이다. 1990년대 초반 시작된 ‘융합’ 물결은 기술에서 시작해 서비스와 산업·정책·법제·정부조직을 한꺼번에 변화시키고 있다. 참여정부는 5년 동안 ‘융합 쓰나미’의 한복판에 있었다. IT산업은 기술발전을 통해 모든 산업을 하나의 범주로 묶고 충돌하게 만든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통신과 방송산업이, 유선과 무선사업자가 부딪혔다. 과기부·산자부·정통부·문광위는 규제정책을 두고 헤게모니 다툼을 벌였다. IPTV가 그랬고, 로봇·홈네트워크·텔레매틱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디지털TV 활성화를 위해 산자부·정통부·방송위가 밥그릇 싸움을 했다. 기업은 융합의 시대를 맞아 다양한 기능의 정보가전 단말을 만들며 세계 시장을 노크하고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기업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기업인들은 ‘반기업 정서’를 우려했다. 지난달 3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정부혁신규제개혁TF 팀장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거친 말을 쏟아놨다.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한 박재완 의원의 발언은 참여정부가 ‘융합’에 대한 대처가 안일했음을 꼬집는 말이었다. 박 의원은 “업종과 영역별로 여러 부처가 나눠서 맡고 있어, 기술 융합과 신산업 출현 등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이어 “2003년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을 추진할 때 부처 간 역할 조정에만 8개월이 걸렸다”며 “로봇법을 제정할 때에도 정통부·산자부·과기부 간 부처 이기주의로 갈등이 심각했다”고 꼬집었다. 과기부 또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산자부 나노기술클러스터 조성(2006년 210억원), 과기부 나노종합FAB 구축(2006년 65억원), 나노특화FAB 구축(2006년 90억원)은 대표적인 중복사례였기 때문이다. 과제평가(전담기관), 조사·분석·평가(국가과학기술위), 예산심의(국가과학기술위, 기획예산처) 등의 기능도 마찬가지였다. 참여정부가 안고 있던 문제자, 이명박 정부에 ‘정통부와 과기부 업무를 산자부에 이관’시키는 구실이 됐다. 부처 간 업무 중복은 ‘융합’이 가져온 현상이다. IT산업이 범용화하면서 IT는 모든 부처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IT의 주무부처인 정통부를 비롯, 산자부·과기부·행자부·국방부·건교부 등 모든 부처는 IT를 변화의 동력으로 활용했다. 정통부는 물론이고 산자부와 과기부·국방부도 로봇 개발을 주도했다. IT839 핵심 정책이었던 홈네트워크 산업을 산자부는 스마트홈으로 달리 불렀다. 건교부도 건설업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홈네트워크 산업에 매달렸다. 텔레매틱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는 홈네트워크와 로봇·RFID 등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산자부는 윤진식 장관이었고, 정통부는 진대제 장관이었다. “해당 사업을 갖고 많이 다퉜다. 정통부 욕심이 과했다. RFID 같은 산업은 부품과 유통산업의 중추인데, 그것마저도 정통부에 뺏기는 일이 벌어졌다.” 산자부 고위공무원의 말이다. IT담당 부처의 영향력이 크면 모든 부처의 컨트롤 타워로 자리 잡지만, 권한이 약화되면 그 기능은 다른 부처와 중첩되는 것처럼 나타난다. 과잉투자로 보이거나, 없어져야 할 부서로 판단된다. 그것이 참여정부의 성과였다. ◆참여정부 주요 IT·과기정책 쟁점 *구분 → 주요 쟁점 - IT839 → 로봇·홈네트워크·텔레매틱스 등 주요 분야에 대해 부처 간 업무중복, 원천기술 부족 - 통방융합 → 정책마련이 늦어지면서 IPTV 등 융합서비스 실시 지연 - 지상파 디지털전환 → 디지털전환 속도 높이기 위한 특별법 지연(국회 계류) - 과기부총리제 → 조정수단이 약하고, 조율 영역이 애매해 성과 미흡하다는 평가 - 나노 기술연구 → 과기부와 산자부 중복투자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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