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 디지털음악 시장은 29억달러(약 2조7000억원) 규모. 5년 만에 무려 1000배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500개 온라인 음악상점에서 600만곡이 판매됐을 정도다. 하지만 불법 다운로드 시장은 여전히 합법 시장의 20배가량에 달했다. 최근 국제음반산업연맹(IFPI)이 발표한 ‘디지털음악 보고서(digital music report)’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음악 산업에 불러온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초고속인터넷의 빠른 보급과 맞물려 음반 시장이 전 세계 유례없이 빠르게 몰락한 우리나라는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소개됐다. IFPI 보고서는 대한민국을 ‘디지털음악 산업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모순에 빠져 있는 시장’이라고 정의했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 시장이 음반 시장 규모를 넘어선 기회의 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법복제로 CD 시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불안정한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수치로 확인된다. 저작권보호센터가 지난해 말 펴낸 ‘저작권 연차보고서 2007’에 따르면 불법 음악 다운로드 행위가 합법 시장에 끼친 피해 규모는 2006년 기준으로 4567억여원에 달했다. 합법 음악 시장 규모인 3708억원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실제 음악 관련 불법시장 규모는 361억원이지만 불법 이용을 통해 사라져버린 미래의 합법 콘텐츠 구매 가능성을 고려해 산출해낸 결과다. 2006년 한 해 동안 음악 불법물 유통은 총 185억4413만1136곡에 달했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 한 명당 1달 평균 45곡을 불법적으로 내려받는다는 의미다. 이는 영상(114억3483만6616편), 출판(100억456만9803편) 등 조사를 진행한 분야 중 가장 큰 규모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개별 콘텐츠의 용량이 작아 인터넷으로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음악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결과다. 이를 반영하듯 온라인 불법물 유통이 99.9%를 차지하며 오프라인 불법행위를 압도적으로 제쳤다. 매체별로는 P2P를 통한 불법 유통량이 100억7691만694곡으로 가장 많았고 웹하드가 60억2982만8753곡, 포털이 24억2057만9590곡으로 뒤를 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불법복제의 이유가 대부분 ‘순수한 인터넷 공유문화’에 기인하는 외국과 달리 불법복제 자체가 돈이 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P2P나 웹하드 업체들이 보다 많은 회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불법 콘텐츠를 다량으로 올리는 이용자에게 포인트를 주거나 심지어는 현금으로 보상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업체에 과태료를 직접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벌금 최고액이 3000만원에 불과한 반면에 한 달 수익은 1억원이 넘는 사례가 많아 배짱 운영을 하게 된다. 불법 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업체 대표를 바꾸는 식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일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욱환 저작권보호센터 기획연구팀 연구원은 “지속적인 단속과 P2P 서비스 필터링 강화 조치로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P2P 서비스의 필터링을 우회하는 방법이 끊임없이 나오는 등 해결할 숙제가 많다”고 밝혔다. 저작권보호센터는 지속적으로 단속 범위와 대상을 넓혀갈 계획이다. ◆단속을 넘어 새로운 서비스 개발 절실 ‘단속과 계도를 넘어 히트상품 개발로.’ MP3 포맷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음악 콘텐츠 무단 공유에 음악업계는 강력한 단속과 계도로 대응했다. 4000억원 규모 음반시장이 1000억원 이하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조치였다. 성과도 거뒀다. 아무 부담없이 음악을 내려받던 사람들이 법적 책임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P2P와 웹하드 직접 공격으로 상당수 업체가 합법화를 모색하면서 공짜 음악 구하기가 예전처럼 쉽지는 않다. 본지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지난 6개월간 음악을 듣기 위해 했던 행동’이라는 질문(복수 응답 가능)에 ‘온라인에서 합법 다운로드한다’는 응답이 58.6%로 ‘불법 다운로드한다’는 응답률 56.1%를 넘어섰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음악의 주 소비계층인 10대와 20대만 뽑아서 통계를 내보니 전체의 72.1%가 ‘불법 다운로드’를 선택해 61.6%의 ‘합법 다운로드’와 격차를 보였다. 또 ‘합법 다운로드’와 ‘불법 다운로드’를 모두 선택한 응답자들이 주로 이용했을 방법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불법 이용을 막는다고 그 수요가 그대로 합법 유료 시장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씨(28)는 “음악을 공짜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무조건 내려받았지만 그 통로가 막힌다면 굳이 돈을 내면서까지 음악을 많이 소비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음악 콘텐츠를 무료 이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향후 유료 구매 의사가 있느냐’고 질문하자 63.5%가 ‘없다’고 대답한 결과는 이를 방증한다. 단순히 불법 이용을 막는 데 그치면 음악 산업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물론 그동안 소비자 지갑을 열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소 번거롭다 뿐이지 여전히 마음만 먹으면 음악을 공짜로 구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대다수 소비자는 유료 음악 서비스를 외면한다. ‘공짜’라는 대체재가 가진 힘이 너무나 강력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소비자의 지갑에서 직접 수금하는 방식을 넘어서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이미 해외에서는 아이밈(Imeem)과 라스트닷에프엠(last.fm) 같은 광고 기반 무료 음악 서비스가 등장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인터넷 서비스 가입과 연계해 공짜로 음악을 제공하는 번들 서비스도 시작했다. 노키아는 유니버설뮤직과 함께 올 하반기부터 자사 휴대폰 구매자에게 1년간 음악을 무제한 공짜 제공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우리나라에는 곡당 과금하는 단순 모델 외에 재생 기간 제한을 두고 월정액을 부과하는 임대 모델까지 등장했지만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디지털 강국답게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음악 서비스 모델이 필요하다. ◆nonDRM 음악 확산 디지털저작권관리(DRM) 시대는 갔는가. 한때 디지털음악 산업의 수호신처럼 여겨지던 DRM의 해체 움직임이 업계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해 초 EMI와 애플이 시작한 DRM 없는(non-DRM) 음악 판매가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소니BMG와 워너뮤직·유니버설뮤직 등 메이저 음반사 4곳 모두로 확산되면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 불법복제를 막고 디지털 형태로 된 저작물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DRM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돈을 주고 정당하게 구입한 음악을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됐다. 많은 서비스 업체들이 DRM 호환을 논의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자 저작권자인 음악업계가 나서서 DRM을 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음악업계는 이번 조치가 ‘차선책’임을 강조한다. 좀 더 많은 온라인 상점에서 디지털음악을 팔고 싶은데 애플 아이팟에서 호환되지 않는 상점은 외면당하는 상황을 타개하려는 방안일 뿐이다. 소비자 권리도 보장하면서 콘텐츠도 보호할 잠금 기술이 등장하면 언제든지 적용할 태세다.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월정액 임대형 서비스나 친구끼리 공유하는 슈퍼디스트리뷰션 서비스처럼 사업 형태에 따라 DRM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도 있다. 하지만 음악업계가 ‘소비자의 편리한 음악 이용’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non-DRM 확산 분위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별 취재팀> 팀장=강병준@전자신문, bjkang@etnews.co.kr, 장동준, 정진영, 이수운, 최순욱, 정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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