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1) 문제제기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50 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이런 시간의 흐름속에서 36년간 우리민족에게 행하였던 만행으로 다시는 화해할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일 두 피해국과 가해국도 어느새 다시 국교를 맺고 화합과 공존,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다시 두 국가에게 날카로운 문제가 떠오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신대문제이다. 일본정부적 배상차원이 아닌 민간 기금인 ‘아시아평화기금’ 으로 정신대 희생자에게 배상하려하고, 피해자들이 이에 분개, 기금수령을 거부함으로써 더욱 불거져나온 이 문제는 양국간은 물론 세계여론들도 이 문제에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 한 . 일 양국모두 뚜렷한 제시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신대문제는 양국간의 ‘ 뜨거운 감자’ 감자와도 같은 문제 이다. 이글에서는 정신대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며. 특히 그동안 일반적으로 논의되어왔던 동남아등 다른 피해국들의 입장은 생략하고 . 반면에 그간 생략되어졌던 북한의 입장을 살펴보아 , 정신대문제를 한국, 북한, 일본의 3국의 국제문제로서 조명하고자 한다.(2)정신대문제의 진상 일본군들에게 현지에서 매춘을 제공하는 소위 `위안소`의 설립은 상해에서 중국과 일본간에 적대감이 심화되어 가던 1932년 초경부터 시작되어 10년이 채못되어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일상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제 2차 세계대전 말까지 일본이 점령한 동아시아의 모든 지역에서 그러하였다. 최초의 위안소라는 제도 설립의 공식적인 명분은 매춘행위를 제도화하고 그렇게 하여 매춘행위를 통제함으로써 부대가 주둔한 지역에서 보고되는 강간사례의 수치를 줄인 다는 것이었다. 그후,1937년 일본 제국군대의 남경점령후 빈번하게 폭력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위안소 계획이 다시 등장하게되었다. 상해 특수부대는 1937년 말까지 상인들과 접촉하여 군부대의 성행위를 목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여성들을 구했다. 이 여성들은 상해와 남경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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