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업계가 차세대 대권 레이스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LCD와 PDP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함에 따라 신성장 동력 확보가 지상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삼성SDI가 ‘꿈의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시장에 포문을 열면서 차세대 경쟁은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기술발달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3D 디스플레이 등 상상 속에 머물던 신디스플레이도 속속 등장해 기존 디스플레이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유의진 삼성SDI AM OLED사업팀장은 “현재 디스플레이 시장은 멀티미디어와 모바일 미디어에 민감한 고객의 욕구를 반영해 디스플레이 제품의 출시 트렌드도 급변하고 있다”며 “LCD와 PDP에서 구현하지 못한 감성화질과 이동성을 갖춘 AM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시장의 세대교체도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밝혔다. 차세대 경쟁은 AM OLED 분야에서 가장 먼저 치열해지고 있다. 난제로 꼽히던 낮은 수율과 짧은 수명 문제가 해결되면서 제품으로 본격 출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삼성SDI가 휴대폰용 AM OLED를 세계 최초로 양산한 데 이어 소니는 12월부터 11인치 AM OLED TV도 출시할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그동안 AM OLED에 미온적이던 LCD업체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각각 AM OLED 사업을 추진할 조직재정비 작업에 돌입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 대만 치메이옵트로닉스(CMO)는 자회사인 CMEL에서 휴대폰용 AM OLED를 시양산하기 시작한 데 이어 4세대 이하 LCD라인을 AM OLED라인으로 전환할 계획까지 수립했다. 중소형 LCD를 주로 생산한 TMD도 2009년부터 TV용 AM OLED를 양산하기로 했다. 이우종 삼성SDI 상무는 “판가급락으로 휴대폰용 LCD사업의 이익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LCD업체들이 판가 프리미엄을 갖춘 AM OLED시장으로 1∼2년 내 앞다퉈 진출할 것”이라며 “업체 증가에 따른 생산량 확대는 가격하락을 촉발해 AM OLED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된 판가 경쟁력까지 갖춰 세대교체의 급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TV용 패널시장에서 LCD가 대량 생산체계로 인한 제조원가 경쟁력을 갖추면서 PDP시장을 잠식했던 현상이 머지않아 휴대폰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재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자종이와 3D 디스플레이도 급부상하고 있다. LCD업체들이 시장 확대를 위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들 디스플레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상용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LG필립스LCD는 내년 상반기 e북용 10.1인치 전자종이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기로 했으며 삼성전자도 세계 최대 40인치 흑백 전자종이와 14.1인치 컬러 전자종이를 개발해 제품화를 서두르고 있다. 3D 디스플레이는 그동안 안경을 착용하던 방식에서 진일보해 안경 없이 디스플레이에 3차원 입체화면으로 구현되는 기술개발 열기가 뜨겁다. 삼성전자는 차차세대를 겨냥한 프린터블 디스플레이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TFT를 화학물로 증착하지 않고 인쇄방식으로 찍어내는 프린터블 디스플레이는 현재 LCD 가격을 많게는 10분의 1까지 떨어뜨려 디스플레이를 마치 신문이나 잡지 같은 소모품처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석준형 삼성전자 차세대연구소장은 “LCD와 PDP는 선발주자인 일본이 개발한 기술을 따라갔다면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한국이 결코 후발주자가 아니다”면서 “차세대만큼은 한국이 먼저 기술을 개척해야만 시장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디스플레이 최강국으로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원천기술에서는 아직 해외업체들의 저력이 만만치 않다. AM OLED는 종주국인 일본이 여전히 최다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유기재료나 장비 개발에서도 한국보다 일본이 한참 앞선 상태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3D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e-잉크·코닥 등 해외 기업이 대부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3D 기술 개발업체의 경우 한국이 미국·일본 등에 비해 수적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비산업리서치 이충훈 사장은 “과거 LCD와 PDP는 특허 장벽이 높지 않았지만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는 원천기술 보유업체들이 특허 침해에 대해 과도한 로열티를 요구할 것”이라며 “차세대 디스플레 시장에서는 아무리 양산기술이 좋아도 원천기술이 없으면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 로열티로 빠져 나가는만큼 기술 주도권 확보가 곧 기업의 사활과 직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파괴력은? AM OLED·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시장잠재력은 어느 정도일까. 디스플레이서치 등 시장조사기관의 전망은 비교적 낙관적이다. AM OLED는 양산이 시작된 올해를 기점으로 2010년까지 매년 103%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도 내년 상용화 물꼬가 터진 이후 2015년까지 7년간 무려 61배나 시장이 급팽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시장이 창출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같은 전망치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실제로 상용화되고 시장의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 그동안 관망세를 보이던 기존 디스플레이 업체의 시장 진출이 봇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 이후 브라운관에서 LCD와 PDP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때도 시장조사기관들은 매년 전망치를 상향 수정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반대로 LCD 등 기존 디스플레이의 반격으로 예상 외로 성장성이 둔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LCD의 성능과 화질이 기술 발달로 AM OLED와 비슷해지면 가격 우위의 LCD가 여전히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수 삼성전자 부사장, 정인재 LG필립스LCD 부사장 등 LCD업계 기술 사령탑은 LCD 기술 진화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AM OLED가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결국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파괴력은 소비자의 호응에 맞춰 얼마나 많은 디스플레이업체(플레이어)가 뛰어드느냐에 달린 셈이다. PDP가 장악한 40인치대 대형 TV패널 시장을 LCD가 빠르게 잠식한 것도 LCD 플레이어가 짧은 시간에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 후방업체 기술경쟁력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패널뿐만 아니라 장비·재료 등 후방업체의 기술경쟁력도 조기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LCD와 PDP가 패널에서는 한국이 세계 정상을 차지했지만 장비와 재료는 대부분 일본·미국업체에 의존하면서 ‘반쪽 강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AM OLED·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등에서 한국 후방산업의 기술경쟁력은 일본에 크게 뒤지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이 분석한 국가별 OLED 후방산업 경쟁력 분석에 따르면 한국을 종합평가에서 100으로 산정했을 때 일본은 114로 무려 14점이나 앞서 있다. 세부항목에서는 공정용 화학소재나 드라이버IC 등을 제외하고는 유리기판·유기발광재료·봉지재 등 각종 소재와 장비에서 일본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AM OLED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삼성SDI의 장비도 일본업체가 장악한 상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펴낸 ‘한일 간 경쟁이 본격화되는 OLED’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4년부터 올해 4월까지 발광재료의 미국 특허 가운데 81%를 일본업체가 등록하는 등 발광재료의 원천기술을 코닥과 UDC(미국)·파이오니아(일본)·CDT(영국) 등 해외업체가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또 OLED 양산장비도 토키와 알박 등 일본 업체가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도 전자잉크 등 전자종이의 원료를 e-잉크·시픽스 등 해외업체가 먼저 개발해 시장주도권을 가질 태세다. 이 때문에 차세대 디스플레이 재료와 장비는 패널 대기업과 공동 개발로 빠른 시간에 기술격차를 줄일 수 있는 공동 프로젝트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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