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 작가의 일본어 소설연구 ƒ. 1940년 전후의 카프 문인들의 정황
한국 근대 문학에 있어 카프 작가들만큼 국제주의적인 사고에 몰입했던 경우는 드물다.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국제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이기도 하지만 라프, 나프, 카프로 이어지는 국제적 조직 연대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한국의 카프 작가들 가운데 라프와 직접적인 선이 닿아있는 경우는 아직 밝혀진 바 없기에 한국의 카프 작가들은 절대적으로 일본의 나프와의 교섭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카프 작가들은 일본 나프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었다는 점은, 이미 그간의 비교문학적 연구에서 뚜렷하게 입증된 바이다.1)
따라서 카프 작가들의 일본어에 대한 입장은 1930년대 후반의 민족어 말살 정책 이전까지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출판어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선에 놓여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평론이나 산문의 문체는 일본어투일 뿐만 아니라 ‘인용’이라는 화법을 통해서 사고방식과 현실인식까지도 이식하여 온 경우가 허다했다2) 그러니 언어 자체가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의식적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들에게는 이태준이 후에 지적하는 민족=언어라는 도식이 익숙치 않았고 오히려 계급적 이념이 항상 사고의 중심이었다. 이들에게는 두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검거 사건이라는 외부적 강제에 의해 이념을 포기하게 되는 사정이 더 고민스러웠던 것이다.
대대적인 검거 이후 1930년대 후반까지의 행적으로 카프문인들을 분류해보면 대개 세 부류로 나누어 질 수 있을 터인데, 박영희와 백철로 대표되는 완전 전향파, 임화, 김남천 등의 중간파, 한설야 등으로 대표되는 비전향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물론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서 유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학행위, 즉 비평이나 작품에 내재된 미학적 가치 지향에 근거한 것이다.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3)로 상징되는 박영희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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