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작품을 보고..... 수업에 늦을까봐서 허둥지둥 기숙사에서 나오다가 운 좋게 학교순환버스를 탔다. 그리고 수업에 늦지 않게 도착하고 자리에 앉아 수업준비를 하였다. 조금 후에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김홍도의 작품을 하나하나 보여주시면서 이걸 보고 다음주에 감상문을 내시라구하셨다. 다음주는 축제인데도 불구하고 수업을 한다고 하니 약간의 섭섭함이 있었지만 감상문을 써야하기 때문에 작품을 하나하나 보았다. 김홍도의 작품을 보고 있다 보니 아까의 섭섭함은 어디로 간지 점점 그의 작품에 빠지게 됐었다. 그래서 감상을 하면서 기숙사에 가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조사해 보았다. “김홍도는 7∼8 세부터 20여세까지 이곳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 선생으로부터 그림과 글 수업을 받았으며 그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여주었던 단원 김홍도는 후에 어진화가로 대성하여 그 명성을 전국에 떨쳤던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로 이름이 드높다. 김홍도는 풍속화를 잘 그리기로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남종화, 평생도, 신선도, 풍속화, 진경산수, 초상화 등 전반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산수화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김홍도의 산수화 배경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남종화풍의 운치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과 함께 우리 산수풍속의 서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그가 44세 되던 해에 정조의 명을 받고 복헌 김웅황과 함께 금강산에 있는 4개군의 풍경을 그린 것을 계기로 하여 그의 독자적인 산수화를 확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김홍도가 실제 경관을 사생한 것이 금강산 사군첩인데 여기에서 우리나라 화강암 돌산과 소나무가 있는 토산을 표현하는 적절한 묘사법을 터득하여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는 모습을 경쾌하게 묘사한 수지법이 완성되었다. 그의 산수화는 여백을 적절히 남기면서 대상을 압축하는 밀도있는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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