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과 어업 민족이었던 일본인의 식생활은 3년경 중국에서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700년경(우리 나라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궁중(宮中) 의식과 신(神)에 대한 의식 등의 필요성에 의해서 일본 요리의 규범이 제정되었다.
다이호우리쓰료우가 제정된 이래, 이 율령은 927년(우리 나라의 고려 건국 후) 요우로우리쓰료우에 의해 보정(補正)되어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는 방법과 요리를 만드는 방법,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방법 등이 세밀하게 규정된 연희식이라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연회식에는 향응(響應)의 선형식과 연중행사 오절구(①성인의 날 ②여자 어린이의 날 ③어린이날, ④칠석날 ⑤중앙절) 등의 각종 계절 행사 요리도 정해졌다. 이때에는 조리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에서도 현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밥과 부식을 담는 그릇을 시작으로 술잔, 받침대 등에도 고도의 예술성이 가미된 작품이 등장하게 된 시기였다.
또한, 이 당시에는 신분에 따라서 그릇이 달라지는 도구의 계급제도 가 생겨나 귀족은 청동기, 은기, 옻기 등을 사용하였다.
이 무렵은 헤이안지다이(平安時代)라고 불리는 귀족 지배의 시기였다. 당시의 고고덴노우가 요리를 좋아하여 요리 연구를 후세에 전해 주었는데, 이것이 <시죠쥬우나곤후지와라죠우신산이교우>이다. 고고덴노우는 현대에 전해져 오는 요리도의 四條類의 開祖로서 요리의 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요리의 연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왔지만, 귀족사외의 식사가 아칭, 저녁 두끼로 형식화됐고, 이와 함께 살생금지령 등 포유동물의 식육금지로 인하여 영양의 균형이 맞지 않아 영양실조와 같은 상태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때에 지금까지의 공가(公家) 귀족의 사치로 여겨져 왔던 형식적인 식사 풍습 등을 혁파하는 질실강건(質實剛健)을 첫째로 하는 무가정신(武家精神)의 경향이 다시 대두되었다. 즉, 무사는 항상 심신을 단련하여 전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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