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5시간도 부족한 사람들….’ 국내 유일의 산·학·연 클러스터 복합체, 대덕특구가 꿈틀거리고 있다. R&D에서부터 사업화까지 서로가 착착 맞아 떨어지는 톱니바퀴처럼 돌며,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 낸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해 ‘25시간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특히 산·학·연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대덕특구본부 건물은 매달 수십 차례의 행사가 치러진다. 정보가 모두 특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산·학·연 전문가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세계 초일류 클러스터를 꿈꾸는 대덕특구 산·학·연 현장을 전자신문대덕연구개발특구 공동기획으로 둘러본다.
#산=대덕특구에는 300여개가 넘는 기업들이 운집해 IT(정보기술)와 BT(바이오기술), NT(나노기술), ET(에너지기술), ST(항공우주기술), RT(방사선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올해 바라보는 매출 규모만 1조4000억원이 넘는다. 지난 11일 밤 9시, SSD·USB 전문 ASIC업체인 세인정보통신(대표 권오진)을 찾았다. 5층 연구실, 30여평 남짓한 이곳에서는 14여명의 연구진이 옹기종기 모여 보드 테스트가 한창이다. 매그넘이나 LSI 등 반도체 업체에 칩을 공급하는 세인의 연구진이 자사 브랜드로 개발한 모바일멀티미디어플랫폼(MMP)의 다음 달 출시를 앞두고 설계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대 시스템총괄 이사는 “칩 설계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업체의 제품 호환 작업을 하다 보니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밤늦게 까지 일하는 날이 많다”며 “그럼에도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통신 전시회 IFA에서 인도 등의 업체로부터 공동 제품 개발을 제안받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을 때는 한없이 몸이 가벼워 진다”고 야근에 대한 애환을 털어 놨다. 입사 8년차로 창업 때부터 회로와 보드 설계를 전담해온 명성삼 시스템 1팀 차장은 “큰 회사에서는 개인의 뜻을 펼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시작했으니 끝을 볼 각오로, 하루하루 제품 생산에 임하고 있다”고 전쟁 같은 하루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노력 덕에 지난 2000년 5월 창업한 세인은 캠코더나 네비게이션에 들어가는 원칩으로 올해 매출 100억원대를 바라보는 번듯한 중견기업이 됐다. “잘 나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해도 비전은 있다”고 말하는 이은주 SW개발 1팀장은 “국산은 너무 비싸 중국이나 대만서 개발한 저가형 멀티미디어 컨트롤러를 가지고 MMP를 개발하는 것은 해외 의존도만 키우는 것”이라며 나름대로 정부 정책에도 일침을 가했다.
#학=랩에 들어서자 마자 둥근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이 곳곳에 펼쳐진다. 모니터 열기와 함께 학생들의 땀냄새도 물씬 풍긴다. 10일 밤 10시에 방문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라랩(지도교수 김정호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내음’이다. 이 테라랩은 3차원 반도체 시스템 패키지 설계가 주특기다. 반도체 성능은 최근에 와서 반도체 외장을 적층하는 기술, 특히 미세한 배선 설계 기술이 성능을 좌우한다는 것. 이 때문에 연구 자체가 미약한 전자파(EMI)까지 잡아 내야 하는 초정밀 작업의 연속이다. 매일 매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이 빈번한 이유다. 그렇기에 이 테라랩의 모토는 독특하다.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인성을 바로 하기 위한 ‘지·덕·체’를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다. 김정호 교수는 “그런 교육 덕에 미국 MIT 학생들과 비교해도 인성이나 창의성, 집중력, 근면성 면에서 나으면 나았지 결코 부족함이 없다”며 “20여명의 학생 가운데 10여명 이상이 완벽에 가까운 천재형이라 평가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이 테라랩은 반도체 칩 적층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쟁 상대도 미국의 IBM이나 인텔, 램버스 등으로 삼고 있다. 국내·외에서 수여하는 상은 랩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 대부분이 1∼2개씩은 다 받은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만 삼성휴먼테크 논문상을 3명이 받고, 랩 전체가 최대 논문제출상을 받기도 했다. 경남 과학고 출신으로 음악도 능해 ‘아티스트 송’으로 불리는 전기 및 전자공학과 박사과정 2년차인 송익환 씨는 “독일서 고속신호전송 시스템을 연구하고 싶다”며 “일주일에 2회 이상 날을 새기도 하기 때문에 체력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IT 메카로 불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이동통신연구단의 이동통신STP(시스템 테스트플랫폼) 랩. 지난 7일 밤 늦은 시각임에도 20여명이 빼곡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박수 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동통신 4세대의 전단계로 HSDPA(쇼) 다음 세대인 3G 기술의 물리계층 통신시험에 부분적으로 성공하자, 몇 몇 연구원이 흥에 겨워 친 박수였다. 이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영화 다운로드 시간을 기존의 10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 이 실험실이 바로 무선 휴대 인터넷 와이브로를 개발한 곳이기도 하다. ETRI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방승찬 무선전송기술연구 그룹장은 “열심히 일하는 것에 비해 보상이 적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가 만든 기술이 상용화 될 때의 뿌듯함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딜레마 한 토막도 들려줬다. 자칫 밤늦도록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오히려 일반인에게 이공계 기피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류병한 광대역 무선 MAC 연구팀장은 “다른 동료들이 야식으로 들고온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연구를 진행할 땐 진한 동료애가 밀려온다”며 “하지만 급변하는 트랜드와 개발 일정에 맞춰 연구에 매진하다 보면 뭔가 되돌아 생각해 볼 과제도 있는데, 이에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이 다소 아쉽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큰 일을 해냈다는 밀려오는 성취감으로 인해 때론 숨도 쉬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비록 야근수당이 1만원에 불과하지만 국가적인 사명감 때문에 하루 하루 연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생활 10년차인 최영민 박사의 말이다. 최 박사는 또 “노력한 만큼 실력이 쌓이는 것”이라며 “내 아들 딸들이 아빠가 연구한 상용화 제품을 직접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온다”고 덧붙였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대덕특구본부·전자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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