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수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갈등의 근원=‘인간의 사상·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인 저작물도 넓게 보면 ‘정보(情報·information)’라고 할 수 있다. 그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보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의 전달 내지 이동을 본질로 한다. 정보의 이용과 전달을 위해 저장매체인 미디어와 전달망인 네트워크가 고안되었고, 이를 통한 ‘생산→활용→재생산’의 발전적 순환 과정을 거쳐 문화가 발전되어 왔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가공·재생산되던 정보는 어느덧 그 효용성이 인정되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재산적 가치를 가진 ‘재화’로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정보가 무형적 재화로서 자리를 잡아가자 법은 정보에 대한 권리를 새로 만들어 이를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권리를 ‘지적재산권’이라고 부르고, 지적재산권을 보호대상으로 하는 일련의 법체계를 ‘지적재산권법’이라 부른다. 그중 저작물인 정보에 대한 것이 저작권법이다. 정보가 경제적 재화로 인식되고 보호가 강화된다는 것은 정보에 대한 독점적 이익이 중요해짐을 의미한다. 이는 정보생산의 인센티브가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지만, 한편으로는 정보의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을 멈추게 하여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정보로부터 차단하고 새로운 재생산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문화발전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것이 저작권 등의 지적재산권에 관한 가치논쟁의 기원이다. 그러나 다른 경제적 재화와 달리 유독 ‘정보재화’의 경우에만 그 타당성이 계속 다투어지고 ‘공유’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권리에 대한 침해가 그토록 빈번하게, 그리고 별다른 죄책감 없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정보의 본질적 특성에서 유래한다. 정보는 한 사람의 ‘이용’이 다른 사람의 ‘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른 재화와 달리 원본 자체의 점유가 이동되는 것이 아니라 원본은 그대로 남아있고 새로운 사본이 만들어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단 한사람에게라도 정보가 전달된 후에는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 사람의 독자적 처분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자를 정보의 비경합성(nonrivalrous), 후자는 정보의 비배제성(nonexcludable)이라 한다. 정보의 비경합성은 정보의 진정한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다른 이가 가져가도 자신에게는 별 영향이 없으니 기꺼이 나누려고 한다. 한편 정보의 비배제성은 무한정한 침해의 위험성을 의미한다. 통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경합성 때문에 더욱 확대된다. 결국 정보의 공유나 침해의 문제는 정보의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이슈이다.
◇기술의 발달과 법의 대응=디지털기술과 인터넷의 발달은 정보, 즉 저작물의 그러한 본질적 특성을 극대화 시켰다. P2P가 대표적인 예이다. 자발적인 공유를 통한 최고의 배포수단이면서 권리자들에게는 한없이 위험한 불법무기인 셈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달은 창작수단이나 창작력의 대중화, 정보의 보편화를 통해 새로운 창작문화를 탄생시켰다. Cut and Paste, Remix 등으로 특징되는 기존의 저작물의 인용, 변형, 융합 등에 의한 창작방식과 UCC라는 새로운 범주의 창작물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사실 그와 같은 창작행위나 창작물은 이전에도 늘 존재했다. 다만 한정된 범위나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이 개입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디지털과 인터넷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참여인구의 증가와 상호교류 및 창작물의 전달범위를 확대시켰다. 첨단의 미디어와 네트워크의 덕을 본 셈이다. 그야말로 문화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면서도 여태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던 open culture의 부흥이 다가오는 듯 했다. 그러나 이는 개개인의 소박했던 행위들이 본격적으로 저작권법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법의 대응이었다. 저작권법에 의한 저작권의 보호는 ① 모든 저작물의 창작자에게 저작물의 이용에 관한 배타적인 모든 권리를 일률적으로 부여하고, ② 그 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③ 그러한 허락을 얻지 않고 이용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이고, ④ 이에 대한 방어적 권리를 저작권자가 갖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러한 저작권법체계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자 오류는 모든 저작물을 같은 수준에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작물의 창작자가 누구인지, 왜 창작을 했는지, 어떻게 활용하려고 하는지 어느 것도 물어보지 않는다. 무조건 모든 권리의 유보(all rights reserved)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실제 저작물들은 결코 똑같은 처지에 있지 않다. 즉 저작자들이 자신의 저작물에 두고 있는 의미가 서로 다른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이 저자임을 밝혀주기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복사해 가기를 원할 것이고 그러다가 잡지에 실리기라도 하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다. 실력은 출중하되 아직 명성이나 인지도를 얻지 못한 어는 사진작가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진으로 돈을 버는 것은 막고 싶어 한다. 또 어떤 프로 뮤지션은 자신의 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대중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하여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곡을 들어보길 원한다. 단 이를 변형하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조건이다. 더 나아가 정보 공유에 의한 인류문화의 발전에 큰 뜻을 둔 사람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저작물을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저작권법은 이처럼 다양한 저작자들의 의사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 가지 룰을 모든 경우에 적용하려는 one-size-fits-all 식의 접근법을 고수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필요한 것은 어떤 활용이 저작자에게 유리한 것인지, 저작자의 의사가 무엇인지에 따라 저작물이 구분되고 이를 다르게 취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구분은 저작자 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결국 저작자가 자신의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좀 더 편리하고 확실한 수단이 법이 제공하여야 할 시스템이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보호받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명시적으로 밝힐 수 있고 남들도 쉽게 알 수 있는 공시 수단을 제공하고 이를 택한 경우에만 all rights reserved를 인정해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저작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등록이 요구되는 저작권등록제이다. 하지만 베른협약의 1908년 베를린 개정규정에서 저작권의 성립에 있어 방식주의를 버리고 무방식주의를 채택한 이래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다수의 입법례가 무방식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현행법상 그러한 등록의무를 법으로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국제조약과 입법의 개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역으로 자신의 권리를 일부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따로 표시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적절한 의사표시를 위해서는 수고와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고, 법적으로 하자 없는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서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받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결국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저작권법 체계와 모순되지 않으면서 저작권자의 자유의사를 좀 더 간편하게 표시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을 통칭하여 ‘자유 라이선스’라고 부른다. FSF(Free Soft Foundation)의 GPL(GNU General Public License)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저작권분야에서 나타난 최초의 자유 라이선스가 바로 2002년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국내에서도 2005년부터 도입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저작자들이 자신들의 저작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자유이용을 허락하면서 붙이기를 원하는 최소한도의 조건을 조사해보니 저작자의 표시, 영리적인 사용의 금지, 저작물의 수정금지, 수정된 저작물도 함께 나누기 등이 제시되었다. 그 후 법률가들의 검토를 거쳐 원저작자표시(attribution), 비영리(noncommercial), 변경금지(nonderivation), 동일조건변경허락(sharealike)의 조건들로 개념화되었고 이를 조합한 6종류의 이용허락계약서가 만들어졌다. 저작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용허락계약서를 선택한 후 이를 저작물에 적용하고 이용자들은 적용된 이용허락계약서를 보고 부여된 이용조건을 확인한 후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하게 된다. 이것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즉 CCL이다. 저작권법에 의한 저작물의 이용허락이 기본적으로 저작자에게 배타적인 모든 권리를 부여하되 특정한 경우에 한해서 이용을 허락하는 방식인 반면, CCL은 기본적으로 저작물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용을 허용하되 저작자의 의사에 따라 일정 범위의 제한을 가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all right reserved"가 아닌 ‘some rights reserved"이다. CCL에서의 commons는 公有가 아닌 共有의 개념이다. 여전히 배타적인 권리를 갖고 있지만 그에 대한 독점적인 이용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CCL의 목적은 자유로운 창작과 리믹스를 위한 소스를 서로 마련해줌으로서 진정한 문화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데에 있다. 따라서 CCL은 단순한 법적 라이선스의 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open culture를 위한 문화운동이다. 물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과 그렇지 않은 저작물에 대한 확실한 구분을 가능하게 하여 올바른 정보 공유의 이해와 함께 저작권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갖게 하는 것도 목표로 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creativecommons.or.kr을 참고하기 바란다. 진정한 정보공유의 가능성을 살리면서 그 부작용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자발적 움직임은 이미 다양한 사례를 낳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있어 창의적인 저작권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iwillbe@chol.com(blog : www.jayyoon.com)
프로필 윤종수 -198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93년 판사로 임관 -2002∼2003년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 (visiting scholarship) -2004∼2007년 사단법인 한국정보법학회(KAFIL) 간사 -2005∼2007년 법원 지적재산권커뮤니티 총무 -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웹 2.0 특강 Project Leader of CCK(Creative Commons Korea) 법원 지적재산권국제규범연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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