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공자의 제자
- 덕행으로 뛰어난 제자
- 언변으로 뛰어난 제자
- 정사에 뛰어난 제자
- 문학에 뛰어난 제자
1> 안 회
2> 중 궁
3> 자 공
4> 자 로
5> 자 하
8. 공자사상과 현대사회 (결론 중요사상과 현대사회의 감상문 5장분량)
9. 공자사상과 현대사회 의 인용 원문 표기 (12 문장 한문표기) ↳ 청년기
야망에 불타던 공자는 여러 나라에 유세하려고 관리를 사직한 뒤, 제(齊)/ 송(宋)/ 위(衛)/ 진(陳)/ 채(蔡)나라를 돌아다녔으나 받아주는 나라가 없고 곤궁에 빠지기만 하자 고국에 되돌아왔다. 남궁경숙이라는 사람이 노나라 임금에게 청해 임금의 후원으로 공자는 남궁경숙과 주나라 서울인 낙읍에 가서 문물을 견학하게 되었다. 사기(史記)에는 이때 공자가 노자를 만나기도 했다고 적혀있다. 낙읍 방문을 마치고 다시 노나라에 돌아온 공자는 그 명망이 더욱 높아져 사방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30세 때 제나라 임금인 경공(景公)이 안자(晏子---제나라의 현명한 대부)와 노나라에 왔다가 공자의 명성을 듣고 그를 만나 정치를 물어본 일도 있다. 그는 이미 30대 청년시절에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노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이는 삼환(三桓氏: 노나라 16대 왕인 환공의 후손으로 노나라 정권을 장악하던 세도가)씨였다. 이들은 국토를 채읍으로 삼고 군대와 가신을 길렀다. 이에 위협을 느낀 노나라 임금인 소공은 삼환씨의 하나인 계평자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삼환씨의 단결된 무력에 패하여 그는 제나라로 도주하였다. 이것이 삼환의 난이라는 사건이다. 공자도 패배한 임금의 뒤를 쫓아 제나라에 갔다(B.C. 517년, 공자 35세 때).
제나라에 간 공자는 경공을 만나 또 정치를 논하고 경공의 탄복을 받아 임용이 검토되었으나 유가(儒家)의 예의가 번거롭고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공자는 그때 악장을 만나 순임금의 소(음악의 이름)를 듣고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 음악으로 인해 석달 동안 고기맛을 잊었다고 한다(술이편).
제나라에서의 임용 실패에 실망한 공자가 2년만에 다시 노나라로 귀국한 뒤에는 시/ 서/ 예/ 악 등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교육하는데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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