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전쟁은 1894년에 일어난 대규모의 민중혁명으로서 대내적으로는 봉건적 수탈에서 벗어나 참다운 농민해방을 추구하고 대외적으로는 외국세력의 침략에 항거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수호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으로서 근대민족운동사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자 우리근대사에 커다란 전환기를 이루었던 혁명이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그동안 봉건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보수세력들과 일제 식민사관에 젖은 인사들에 의해 외면되어 결국 "동학란" 이라고 일컬어져 동학에 의하여 일어난 단순한 반란으로 규정하여 왔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학계와 운동세력에 의해 새로운 평가를 받기 시작했어며 최근 농민을 주체로 하는 반봉건, 반침략의 민족운동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동학농민혁명으로 재평가 받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을 보면 1, 2, 3 차 교조신원운동을 바탕으로 고부봉기를 일으켜 전주입성에 이르는 동학농민군의 전진적 승리의 단계인 제 1차기병과 전주화약을 통하여 동학농민군이 지방통치를 이루는 단계, 그리고 동학농민군이 재봉기하여 공주전투를 거치는 단계인 제 2차 기병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제 2차 기병은 국토를 강점하고 국권을 유린하려는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우리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민족의 자위를 위한 민중의 항전으로서 이는 우리역사상 최초의 민중운동인 동시에 우리 역사에 길이 빛날 민족사의 위대한 구국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사회적 배경과 혁명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동학농민혁명의 배경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당시 조선을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던 청· 일의 세력관계 속에서 외국(청)의 무력개입에 의해 패배하면서부터 민씨정권의 대외의존성은 더욱 심해졌다. 정치적으로는 청이 우세한 가운데 경제적 침략을 둘러싼 청· 일의 각축전 또한 치열하였다. 특히 일본은 청이 임오군란 이후 '수륙무역장정' 을 통해 얻은 특권 - 한성에서의 개시 및 내지에서의 행상권 - 을 동일하게 요구하면서 면직물, 견직물, 도자기 등을 농촌사회 깊숙이까지 침투시켰다. 그것은 곧 국산 수공업품의 시장을 잠식하여 갔으며 일반농가의 화폐수요를 증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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