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파에 대한 역사적 평가>
-19세기 중엽 이후의 근대 국가․사회 건설을 지향하던 부르주아 개혁사상.
이 시기는 안으로는 봉건사회의 낡은 틀을 부수고 근대사회로 나아가려는 정치·경제·사회적 변화가 일고 있었고 밖으로는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는 구미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위협이 높아지고 있었다. 개화사상은 이러한 국내의 봉건적 모순을 자각하고 세계 역사발전의 방향에 따라서 내외정치를 개혁하려던 개혁사상이었다.
개화(開化)라는 용어는 본래 <주역>에서의 '개물성무(開物成務) 화민성속(化民成俗)'에서 취한 용어로서 모든 사물의 지극한 곳까지를 궁구(窮究), 경영하여 일신(日新)하고 또 일신해서 새로운 것으로 백성을 변하게 하여 풍속을 이룬다는 뜻이다. 조선왕조 말기의 개화사상에서 19세기 중엽의 민족적 위기를 당하여 나라와 백성을 자주적으로 근대화하고 변혁해서 진보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개화사상은 먼저 실학으로부터 화이론적 세계관의 극복과 자주적 개국론, 중세적 신분제 부정과 인간평등 사상, 그리고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 등을 계승하였다. 이것은 김옥균 등이 박규수를 통해 북학을 접하면서 받아들인 것으로서 주로 박지원 단계의 북학의 도달하였던 개혁사상의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북학론을 원형으로 한 이러한 초기 개화사상은 아직 중세사상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아니었으므로 개항 이후 개화파가 본격적으로 외부 문물과 접하면서 근대부르주아사상으로서 개화사상의 내용도 더욱 풍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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