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주요 작가와 작품
1) 1920년대의 소설과 김동인
2) 1920년대의 소설과 염상섭
3) 1920년대 프로문학의 내적 형식
5. 주요 동인지와 잡지 및 문학적 경향
6. 기타
한일합방 이후 억눌렸던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 정신은 1919년 3.1운동으로 불타올랐다.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3.1운동은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벌인 거족적인 투쟁이었다. 이 운동을 계기로 상해에 임시정부가 들어서는가 하면 중국 각지에서 무장 독립투쟁도 활발해졌다. 구내에서의 독립운동 역시 더욱 고취되었다. 일제는 이 거센 흐름을 무마하기 위해 일시적인 유화 정책을 썼다. 문화의 각 부분에 대한 강제를 조금씩 풀어줌으로써 조선민족의 무장투쟁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였다. 언론, 집회, 결사, 종교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허용이 되자 근대 조선에는 언론 운동, 문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3.1운동 이듬 해에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창간되는가 하면 순수 문예지 [창조], [폐허]와 종합지 [개벽] 등이 잇따라 등장하여 근대문학을 본격적으로 열어젖혔다. 많은 소설가들이 이와 같은 동인지, 잡지를 배경으로 대거 문단에 진출하였다.
근대 문학의 최초의 순문예지는 [창조]이다. [창조]는 3.1운동 몇 개월 전에 동경에서 준비되었다가 3.1운동 직후 국내에서 속간되어 9호까지 출간된 동인지로서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이 주로 활동하였다. [창조]는 계몽주의를 거부하고 사실주의를 외쳤으며 구어체 문장을 확립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폐허]는 [창조]를 뒤이어 나온 순수 문에지로 김억, 염상섭, 오상순, 황석우 등이 주요 동인으로 활약하였다. [폐허]란 명칭은 독일 시인 실러의 싯구 '옛 것을 멸하고 시대는 변하였다. 내 생명은 폐허로부터 온다'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폐허]는 명칭과는 달리 패배주의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패배를 극복하는 희망을 꿈꾸었다. [폐허]에는 황석우의 퇴폐적 낭만주의, 김억의 서구 상징주의, 오상순의 허무적 이상주의, 염상섭의 사실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개벽]은 1920년에 창간된 한국 최초의 몬격적인 종합지다.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