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집자리와 무덤을 통해 본 신석기사회의
二.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무덤
三. 남해안지방 신석기사회의 발전단계와 그 성격
Ⅴ. 맺음말
Ⅰ.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연구사 검토
一. 광복 이전의 신석기문화 연구
1. 1910년대 이전
조선 후기에 우리 자신의 옛 것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이미 그 성과를 보이며 추사 김정희에게서 완숙단계에 접어들어 근대적이고 자생적인 고고학이 발달할 가능성이 보였으나 식민지로의 전락과 금석학과 문헌고증학에 대한 집착으로 더이상 계승되지 못했다.
일본과의 수교이후 일인들이 조선고고학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酒勺景明이 광개토대왕 비문을 탁본해 온 1880년대 중반부터이며 1887년 무렵부터는 조선에 석기시대 유적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八木奘三郞는 전공자로서 조선 고고학 조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1880년대 후반부터 일본고고학계에서 전개되어간 “인종론(민족론)”은 오늘날 한국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계통론․전파론의 기초가 된 논의라고 판단되며, 초기에 활동한 八木과 특히 鳥居龍藏이 내세운 인류학적 방법이라는 것도 사실은 인종론이라고 할 수 있다.
藤田亮策는 일선동조론에 바탕을 두고 조선의 문화교량역할에 따라 문화의 계통과 전파를 따지게 되는데 이 논의는 광복 이후에도 고스란히 계승되어 현재 한국 고고학의 가장 중심되는 연구주제가 되고 있다.
2. 1910년대 - 1920년대
1910년대는 조선고고학을 제도상으로 일인들의 식민지 행정에 완전히 종속되어 지도록 만든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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