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 화가 다비드 미술 / 다비드(세계미술문고 19) : 금성출판사 편집부 편, 금성출판사, 1976
Neo-Classicism : Hugh Honour, 1968
Louis David : Louis Hautecoeur, 1954
Pageant-Master of the RepublicJacques-Louis David and the French Revolution : D. L. Dowd, 1948
()
본문일부/목차
1. 개요
2. 형성기
3. 명성을 얻음
4. 후기
5. 참고문헌 명성을 얻음
1780년 파리로 돌아온 다비드는 〈자비를 기원하는 벨리사리우스 Bélisaire demandant l'aumône〉를 완성하여 전시했는데, 이 작품에서 고대에 대한 우아하고 감상적인 접근과 푸생을 연상시키는 생생한 기법을 결합시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782년 그는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활발한 마르그리트 페쿨과 결혼했다. 페쿨의 아버지는 부유한 건축 청부업자이자 루브르의 건축 총감독으로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페쿨과 결혼한 날부터 다비드는 성공의 길로 치닫기 시작했다. 1784년 뛰어난 기량으로 비애감을 표현한 〈헥토르를 애도하는 안드로마케〉로 왕립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아내와 화실 조수들을 데리고 주문받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로마로 갔다. 그 그림은 원래 피에르 코르네유가 쓴 〈호라티우스〉의 파리 공연에서 처음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나 결국 완성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희곡에 나오는 어떤 사건과도 상관이 없었다. 이 그림의 주제는 호라티우스 집안의 3형제가 알바와의 전쟁에서 로마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아버지에게 맹세하는 엄숙한 순간으로서 작품 전체에 극기심과 확고한 용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뚜렷한 윤곽, 꾸밈없는 네모난 공간, 차분한 색조, 프리즈식 구도, 선명한 조명 등의 회화적 처리 방법은 그 주제와 더불어 꾸밈이 없는 비(非)로코코 양식이다. 이 작품은 로마에 있는 다비드의 화실에서 처음 전시되었는데 그가 프랑스로 돌아온 뒤 1785년에 공식 파리 살롱전에 출품되어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오랫동안 우아한 곡선과 상류층 부인의 거실 같은 주제에 탐닉해 있던 유럽의 중독증세를 치료해줄 예술적 부활의 선언으로 간주되었다(신고전주의라는 용어는 당시에 사용되지 않음). 원래 의도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결국 이 작품은 퇴폐적인 귀족계급의 타락을 끝장내고 로마 공화국의 특성인 엄격하고 애국적인 도덕심으로 되돌아가자는 선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