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기원전 350년이라고 하면 중국은 전국시대였다. 활거하는 봉건제후국 간의 끊임없는 전란에 짓밟혀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평화와 번영의 도래를 갈망하고 있었다. 진(秦)나라의 효공(孝公)이 상앙(商 )의 제안을 받아들여 진나라의 개혁을 크게 추진했던 것이 바로 그 해의 일이다. 주변의 적국을 멀리 하면서 진나라는 역사의 흐름에 입각한 내정의 개혁에 전념하고, 타국으로부터의 후진성을 탈피하여 당시 최강국의 하나가 되었다.
기원전 246년, 진나라의 태자 정(政)이 왕위에 올라 법률을 강화하고 강병책을 추진하여 국내의 개혁을 완성시켰다. 주위의 6개국을 차례로 합병한 진왕 정은 마침내 기원 전 221년에 중국의 통일을 이룩했던 것이다. 스스로 그 위업을 기려 그는 스스로 최초를 의미하는 시황제(始皇帝)를 자칭했다.
기원 전 258년, 시황제는 진나라의 장양왕(蔣襄王)의 아들로, 당시 부친이 인질로 되어 있던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죽음에 의해서 왕위에 오른 것은 정(政)의 나이 13세 때이다. 왕위에 즉위하여 9년 후인 기원 전 238년에 반란이 일어나서 그것을 진압한 이래, 친정으로 옮겨가 정치·경제·문화·군사의 각 분야에 걸쳐 변혁에 착수했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의 기초가 이로부터 구축된 것이다. 중국인들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진시황이 중원대륙을 하나로 통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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