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회화적 상징 우리나라에서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과 청동기의 선각화(線刻畵) 등 주술성이 강한 도안적 단계를 거쳐 삼국시대에는 고대회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고분벽화가 성행했으며 불교회화의 유입 등으로 사실적인 묘사력이 크게 진전되었다. 그리고 솔거(率居) 등 전문화가의 활약과 아좌태자(阿佐太子)와 같은 왕족여기화가(王族餘技畵家)가 등장하기도 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회화가 대종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다. 한편 고려는 고대적 질서에 반발하여 출현한 국가로 덕교(德敎)와 예교(禮敎)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왕도정치 수행에 필요한 인재등용을 위해 개국초부터 과거제도를 채택했고 유·불·도(儒佛道) 3교에 기반을 둔 문풍(文風)을 진작시킴으로써 한문학(漢文學)의 성행과 지배층의 문사화(文士化)와 함께 감상적 기능을 지닌 일반회화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이러한 일반회화는 왕권의 안정과 문신귀족체제의 확립에 따라 문운(文運)이 극에 달했던 문종(文宗:1047~83 재위)대에 왕공문신들의 한묵풍류(翰墨風流) 취향에 힘입어 여기적 문인화가가 출현하고 감상화로의 전환이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를 통해 전래되었던 북송의 그림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중기에는 곽희(郭熙)의 화풍과 문인화론이 유입되어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도화원(圖畵院)의 설립과 이령(李寧)을 비롯한 화원들의 활약, 명승명소도 계열의 실경산수화 전통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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