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골과 진골]
[두품의 신분]
[사회생활의 제약]
[관직상의 제약]
[골품제의 해체 및 기타]
참고자료
사실 골품제도와 같은 엄격한 신분제도가 삼국 중 신라에서만 형성되어 하나의 사회체계로까지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은 경주의 특수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고구려나 백제는 각각 몇 차례에 걸친 천도로 말미암아 본래 족제적 성격이 강했던 왕도의 부족조직을 약화시키고 말았는데 ―왕도의 부족조직이 새로운 수도에 고스란히 옮겨질 수는 없는 것이며, 실제로 천도중에는 바로 이 부족조직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단행된 경우가 많았다―신라만은 그 건국에서부터 멸망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수도를 옮긴 적이 없었다. 인믄 신라사의 하나의 불가사의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신라는 시종 경주를 고수함으로써 왕경의 부족조직은 이렇다 할 큰 변화를 겪지 않은 채 후대에까지 온존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삼국 중 신라만이 족장층의 혈연적 유대가 한 지역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골품제도의 강고한 일면이 이 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사실 골품제도는 인도의 카스트제도나 일본의 씨성제도와는 달리 골품 자체가 세습적인 직업으로 분화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골품제는 그 사회적 기반이 박약하여 성골의 소멸과 더불어 붕괴되어 간다고 논하는 사람조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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