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 근대 전후의 한국 민족주의 개관
들어가며
1. 고종의 민국정치 이념과 국기 제정
(1) 고종의 정치의식
입헌군주제와 공화제에 대한 인식
고종의 나라 - 민국(民國
(2) 국기(國旗) 제정과 정체성 형성의 노력
국기 제정의 배경
태극팔괘기의 유래와 의미
국기의 수용과 근대적 민족 정체성
(3) ‘대한(大韓)’이라는 국호의 제정
2. 개화 정책을 위한 고종의 신도서 구입사업
(1) 고종의 개화를 위한 신도서 구입사업 논의의 의의
(2) 규장각도서 중국본의 원 소장처별 구성
(3) 고종의 집옥재 경영과 중국도서 수집
3. 고종 시대 서울의 근대적 도시 계획사업
1. 19세기 조선 서울의 모습
2. 19세기 서울을 만든 고종의 노력
(1) 자주적 과정으로서의 도시 개편
4. 결론 1. 고종의 민국정치 이념과 국기 제정
(1) 고종의 정치의식
1897년 10월 고종은 황제 즉위식을 갖고 대한 제국을 선포한다. 이는 지금까지 왕국이었던 조선의 국체를 제국으로 바꾼 사건이었고 또한 전제왕정의 강화를 천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역사적 평가는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즉, 동시대의 서양이나 일본에서 행해졌던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를 실시하는 것이 조선의 개화나 근대화로의 이행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복고적인 전제정치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고종은 입헌군주제나 공화제에 대한 지식적 기반 없이, 왕권이나 황제권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전제정치를 강화하였고, 이에 따라 조선의 근대화 또한 늦어졌다고 평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고종이 실제로 취한 정책과 행동들을 추적해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다. 오히려 고종은 입헌군주제, 공화제, 심지어는 사회주의 사상까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로부터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를 추구하기 위한 정치모델을 고구한 끝에 황제 중심의 제국 형태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종의 이러한 접근태도는 동도서기(東道西器)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전(國典)은 본디 완전히 바꿀 수 없으며, 서속(西俗) 또한 하나같이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당연히 참작할 바는 있다” 고종실록 권38, 광무 원년(1897년) 8월 24일조는 말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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