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술을 사랑한 송강
정철의 일생에 대한 간단한 메모
1536년(중종(中宗)3년) - 1539년(선조(宣祖)26년) 송강(松江)은 1535년(중종(中宗)31년)에 서울 장의동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집안은 큰 누이가 계림군 유(桂林君 : 성종(成宗)의 셋째아들인 계성군의 양아들 인종(仁宗)의 사촌)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어린시절 왕궁(王宮)을 자주 드나들며 뒤에 인종(仁宗)의 뒤를 이어 명종(明宗)이 될 경원대군(慶原大君)과 친숙하게 지내기도 한 이름난 가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10세 되던 해인 1545년(명종(明宗)즉위)에 을사사화가 일어나 집안이 풍지박산된다. 을사사화란 인종(仁宗)이 왕(王)이 되자 인종(仁宗)의 외삼촌인 윤임(尹任)이 세도(勢道)를 부리다가 8개월 만에 죽고 명종(明宗)이 왕(王)이 되자 이번엔 명종(明宗)의 외삼촌인 윤원형(尹元衡)이 세력을 얻어 윤임(尹任)일파를 역모죄로 몰아 귀양보내고 죽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때 그의 매부인 계림군(桂林君)이 이 역모와 관련이 있다하여 무고하게 죽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정철(鄭澈)의 집안에도 화가 미치어 맏형은 죽고 아버지는 관북지방인 청평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5년간을 어린 정철(鄭澈)은 아버지의 유배지를 따라다니느라 생활의 안정은 물론 공부할 기회마저 잃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귀양에서 풀려난 것은 그가 16세인 1551년(명종(明宗)6년)인데 그 길로 그의 아버지는 자연에 묻혀 살기로 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라남도(全羅南道) 창평(지금의 전라남도(全羅南道) 담양군 창평면)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 가족의 이주야말로 정철(鄭澈)에게는 대전환기를 맞는 기회가 된다. 그간 유배 생활로 잃었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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