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자신과 비슷한 기계인형(로봇)을 만든 첫번째 동인은 유희(遊戱), 즉 재미 때문이다. 서양사에서 로봇의 기원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구경거리로서 출발했다. 로봇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오랜 공생관계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로봇테마파크란 새로운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바야흐로 테마파크의 전성시대다. 무슨 드라마나 영화가 떴다 하면 어김없이 촬영세트로 테마파크를 만든다. 원어민과 생활하는 영어마을에서 문학, 미술, 음악, 관광명소, 먹거리까지 테마파크에 동원되고 있다. 각 지자체들이 앞다퉈 유치하려는 테마파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목적은 딱 하나.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다. 요즘 지능형 로봇열풍을 타고 로봇이 지자체들이 군침을 흘리는 신규 테마파크 아이템으로 뜨고 있다. 오는 2012년 완공될 세계최초의 로봇테마파크 ‘로봇랜드’를 어느 지역에 유치하느냐를 두고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로봇랜드란?=로봇랜드는 산자부가 차세대 로봇 수요 창출을 목표로 추진하는 미래형 테마파크 사업이다. 지난달 공개된 사업계획에 따르면 로봇랜드는 10만∼30만평의 부지에 첨단로봇을 테마로 한 전시관과 체험관, 경기장, 오락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업규모는 정부와 지자체, 민자유치를 합쳐서 최대 3000억원. 현재까지 인천·광주·대전 등 11개 광역단체와 5개 기초단체가 로봇랜드 유치의사를 밝혔다. 산자부는 오는 8월까지 전국의 희망 지자체 중에서 적합한 예비사업자를 선정하고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2년에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로봇랜드는 단순한 위락시설이 아니라 ‘로봇’을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 서비스를 포함하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 입장객들은 로봇랜드에 들어가 첨단 로봇기술을 자연스럽게 접하하면서 어느새 잠재적 로봇구매자로 변신하게 된다. 또 고객들이 발견한 로봇제품의 각종 문제점은 즉시 개발자들에게 전해져 로봇랜드 전체가 로봇기술개발을 위한 거대한 테스트베드로 작용한다. 로봇랜드를 유치한 지자체는 지능형로봇의 세계적 관광상품을 유치하고 로봇산업의 허브로 격상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지자체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로봇랜드 유치를 위한 태스크포스팀까지 가동할 정도로 경쟁이 뜨겁다는 소문이다. △로봇테마파크의 효용성=로봇을 단일주제로 표방하는 대규모 테마파크는 아직 로봇왕국 일본이나 미국, 유럽에도 없다. 따라서 로봇랜드와 직접 비교할 해외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하지만 첨단산업과 연계한 테마파크 전체로 시각을 넓히면 우주공학분야의 케네디우주센터(미국), 장난감 블록을 테마로 잡은 레고랜드(덴마크) 등의 성공사례가 보인다. 케네디 우주센터는 미국민들에게 우주개발계획의 당위성을 설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레고랜드는 장난감 왕국 레고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에 확실히 각인시켜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지난 1971년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기존 디즈니랜드의 100배가 넘는 넓은 부지로 들어선 디즈니월드는 이후 막대한 관광수요 창출로 미국 동남부의 경제지도를 바꿨다. 이들 산업연계형 테마파크는 모두 초기 구상단계에서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관련산업을 한차원 성장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테마파크 시장은 양적으로만 보면 세계 정상급이다. 실례로 세계 테마파크 입장객 순위에서 에버랜드(934만명)와 롯데월드(910만명)은 각각 5위, 6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내용면에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구상하고 상품화하는 기획력은 크게 모자라는 수준이다. 따라서 로봇랜드가 괜찮은 볼거리만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면 연간 수백만명의 관객유치도 가능할 전망이다. 로봇을 써본 적이 없어 필요성도 못느끼는 대중들에게 집단적 로봇문화체험은 로봇수요층과 로봇기술을 함께 키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물론 위험요소도 있다. △ 로봇테마파크, 성공의 조건=우선 입지선정이 중요하다. 대규모 테마파크가 성공하려면 관람객이 지속적으로 찾기 쉬운 지리적 요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 평가에 따르면 로봇랜드는 연간 200만명의 관람객은 유치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 당연히 수도권에 인접하거나 대도시일수록 관람객 유치에는 유리하다. 또 KTX열차나 고속도로와 연결성도 함께 고려할 변수다. 둘째는 최적의 콘텐츠 조합을 확보하는 일이다. 최소 10만평 이상의 대규모 테마파크를 채우려면 로봇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오락콘텐츠가 골고루 필요하다. 미디어 융합시대에 단일콘텐츠에 너무 의존하는 테마파크는 관객들을 쉽게 식상하게 만들고 다시 방문할 확률도 줄인다. 명색이 로봇테마파크지만 보편적인 오락성을 위해서는 절묘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또 로봇콘텐츠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무조건 태권V가 마징가를 이긴다는 식의 국수적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로봇테마파크의 성공에는 일본,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필수적이다. 따라서 한국인이 아닌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보편적 로봇이야기를 끌고 가야 한다. 로봇랜드를 오락성과 공익성을 겸비한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기왕 세계최초의 로봇테마파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면 근사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데 아낌없이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다. 21세기 테마파크의 성패는 남들과 차별화된 상상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인터뷰-김혁 와일드옥스엔터테인먼트 대표. “로봇테마파크는 로봇을 내세우기 보다 놀이공원의 기능에 포커스를 더 맞춰야 합니다. 전시기획업체 와일드옥스엔터테인먼트의 김혁 사장(43)은 국내서 손꼽히는 테마파크 전문가이자 무려 4만점의 로봇관련 아이템을 소장한 로봇매니아로 유명한 인물이다. 전문가 관점에서 요즘 지자체들이 앞다퉈 유치하려는 로봇테마파크사업에 대해서 충고할 이야기도 많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테마파크 건설붐이 일고 있어요. 성공한 테마파크의 공통점은 딱 하나 재미입니다.” 로봇이란 테마에 너무 집착하다가 재미를 놓칠 경우 로봇테마파크가 지향하는 공익성과 수익성을 모두 잃게 된다는 지적이다. 김사장은 지난 93년 성대히 치러진 대전 과학 엑스포가 오늘날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를 들면서 로봇테마파크의 장기적 발전 방향부터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전 엑스포는 행사가 끝난 후에 어떻게 끌고 갈지 미래 청사진이 전무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 일단 행사를 치르고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인 결과였지요” 테마파크는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이미지 변화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근사한 건물의 외형에 너무 정력을 쏟으면 훗날 변신을 하는데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또 김사장은 테마파크의 설계단계부터 공간배치와 동선, 스토리 구성에 따른 상품개발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봇랜드가 완성되는 오는 2012년 로봇기술이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솔직히 예측이 힘듭니다. 로봇콘텐츠로 테마파크를 꽉 채우는 것보다는 변신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는 편이 성공가능성을 높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가장 인상적인 테마파크로 지난 70년 오사카의 ‘만국박람회(EXPO)’를 기념하는 엑스포랜드를 꼽는다. 수십년이 지난 현시점에도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상징하는 엑스포랜드의 생명력이야말로 로봇테마파크가 배울 미덕이라는 것이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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