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디스플레이의 역사는 다른 산업도 그렇듯이 극일(克日)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이미 TV나 브라운관, PDP, LCD를 생산하고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을 때 공장 한켠에서 첫 제품을 출시하고 디스플레이 강국으로의 꿈을 키워왔다. 때로는 일본 제품을 모방하기도 하고 은퇴한 일본 기술진을 모셔와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일본 부품업체들이 자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첨단 부품을 주지 않으면 달려가 몇일 동안 애원하기도 했다. TV의 경우 일본기업을 앞지르는 데 40년의 세월이 소요됐으나 LCD는 양산을 시작한 지 불과 4년, PDP는 양산후 3년 만에 일본기업들을 앞질렀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디스플레이 강국이라는 데 어느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국내 디스플레이 역사의 시작은 지난 66년 LG전자(당시 금성사)가 국내 최초의 흑백 TV를 생산하면서 시작됐다. LG전자(당시 금성사)는 지난 66년 국내 최초의 흑백TV를 생산했다. 국산1호 TV였던 ‘VD-191’은 진공관식 19인치 제1호 모델을 뜻하며, LG전자가 라디오를 처음 개발한 지 7년만의 쾌거였다. LG전자는 완제품을 내놓기 전에 수상기 100대분의 부품을 들여와 부산 온천동 공장에서 시험생산을 통해 조립라인의 기능공들을 훈련 시킨 다음 생산에 들어갔다. 외국제가 독무대를 이루던 때라 ‘VD-191’의 당시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소비자 판매가격은 6만8000원. 쌀 한가마에 2500원 하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27 가마값에 해당된다. 이를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500만∼600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달려 소비자들이 구입 신청을 받아 공개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만 파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돈이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TV수상기를 갖고 있지 않은 세대주를 증명해야 하는 각종 서류를 내야만 살 수 있었다. 1970년에는 삼성과 일본 NEC와의 합작사인 삼성NEC(현 삼성SDI)가 흑백 브라운관 양산에 착수했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했던 브라운관의 국산화가 이루어진 계가였다. LG전자는 다시 1977년 국내 최초의 컬러TV ‘CT-808’을 생산했다. ‘CT-808’은 19인치 수출용 모델로 전량 북미지역으로 수출됐다. 한편 국내 소비자가 컬러TV를 이용하게 되기까지는 3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정부 당국이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컬러TV 국내보급과 방송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점차 일본과의 격차를 좁히면서도 여전히 일본의 벽을 실감해야 했다. 소니, 파나소닉(내쇼날) 등은 TV 톱 브랜드로 이름을 날렸으며 ‘트리니트론(소니의 브라운관 브랜드)’으로 대변되는 일본 부품의 위력을 몸소 체험해야 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실망하지 않고 브라운관 성능을 높이고 TV 성능을 높였다. 그리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면서 규모의 경제에 점차 도달해 갔다. 1990년대 들어 국내 디스플레이업체들은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전자계산기 등에 사용돼왔던 액정표시장치(LCD)가 노트북에 채용되면서 새로운 황금 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LG전자는 1987년부터 삼성전자는 91년부터 LCD에 대한 R&D를 시작했다. 양사는 모두 1995년에 1세대 LCD 라인을 가동하면서 LCD 시장이 진입했다. 그 당시에는 샤프와 도시바, 히타치, 마쓰시타 등이 노트북용 시장을 석권해왔던 시기였다. 사업 초기에는 모든 부품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야 했고 기술마저도 일본에서 들어왔다. 그러나 국내 LCD 업체들은 기술력 부족을 적기 투자와 패널 사이즈 표준화로 일본 기업을 압박했다. 일본 기업들이 11.4인치를 표준 규격으로 삼고 있을때 삼성전자는 12.1인치를 표준규격을 밀어붙여 표준화를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3세대 라인을 투자한 1998년 대형 LCD 분야에서 1위를 달성했다. 또 일본 기업들이 LCD 공급과잉을 이유로 5세대 투자를 주저할 때 LG필립스LCD는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5세대 투자를 진행, 세계 1위 기반을 닦았다. 그 이후로는 일본 기업들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차세대 라인을 주도했고 LCD 산업의 키는 우리나라에게로 넘어왔다. 대형 TV용 디스플레이로 가장 최근에 개발된 PDP분야는 더욱 극적이다. LG전자와 삼성SDI가 마쓰시타나 후지쓰 등 일본 기업에 비해 5년 가까이 늦은 2001년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을 앞서는 데는 3년 정도의 기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CRT, LCD 등에서 경험했던 ‘과감한 투자’, ‘기술 개발’, 등의 승리의 법칙을 PDP에도 적용했기 때문이다. LCD와 PDP의 경우 매출액에서 뿐만 아니라 크기 경쟁에서도 국내 기업이 시장을 주도했다. LCD의 경우 40인치 부터 국내 기업들이 가장 먼저 제품을 출시했으며 제품 개발도 주도했다. PDP의 경우에도 60인치 이상의 국내 기업들의 독무대였다. LCD는 지난 98년 이후 국내 기업들이 매출액에서 세계 1,2위를 다퉜다. PDP는 2004년부터 삼성SDI, LG전자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위를 기록했다. 브라운관 역시 2004년부터 국내 업체들이 일본 기업을 앞질렀다. ‘소니’, ‘파나소닉’ 등의 브랜드 명성 때문에 영원히 1위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TV 완제품 분야도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액 기준 1위에 올라섰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등은 국내 3대 수출 품목이지만 세계 1위는 아니다. 그러나 디스플레이 분야는 우리 기업이 세계 1위다. 국내 기업인들의 피땀과 정부의 강력한 육성책 들이 모아져 이루어낸 결과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가치가 있다. 유형준기자@전자신문, hj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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