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A사는 경영권 공격을 받았다. B사가 A사의 주식 18.32%를 사들여 경영권을 위협한 것. B사는 또 다른 MSO인 C사와 결탁해 보유 지분을 대폭 늘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30.41%를 확보하고 있던 B사 회장은 서둘러 지분 확대에 나섰지만 두 회사의 동시다발적인 공격에 경영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A사의 인수로 B사는 단숨에 업계 1위로 도약했다.
기업들이 경쟁회사나 사모펀드 등과의 경영권 분쟁이 늘어나면서 경영권 방어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여기에는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시차임기제’ 등 갖가지 전략이 동원되고 있다. 과거 경영권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기업들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10여곳의 기업이 정관 변경을 통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방어책을 도입하는 기업수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고 그 방법도 단순해 공격을 막아내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정관 변경으로 경영권 방어=지난해 동승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셋톱박스 전문업체 홈캐스트는 적대적M&A 방어 방법으로 ‘초다수결의제’를 택했다. 출석 주주 50%와 발행주식수의 4분의 1이상만 동의하면 됐던 주총 결의방법을 ‘출석주주의 70% 이상, 발행주식수의 50% 이상’으로 강화한 것. 주총 결의 요건을 까다롭게 해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이다. 모바일솔루션 업체 인프라밸리도 지난 22일 주총에서 ‘황금낙하산’ 전략을 승인했다. 황금낙하산은 임원이 비자발적으로 물러나게 될 경우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해 인수 비용을 증가시키는 방법. 임원을 자리에서 떨어뜨리는 비용이 비싸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인프라밸리는 정관에 ‘퇴직보상액으로 50억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솔믹스와 세종공업은 ‘시차임기제’를 도입하기 위한 정관변경 안을 주총에 상정했다. 이 역시 이사의 임기를 분산시켜 이사진을 한꺼번에 교체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이다. ◇‘경영권 지키기’ 아직 미흡한 수준=최근 대한상의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유가증권시장 200대 기업의 절반 가량이 경영권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지만, 방어장치를 도입한 기업은 2.2%에 그쳤다. 이는 정관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무법인 해우의 엄재민 변호사는 “정관을 바꾸려면 출석주주 3분의 2이상, 발행주식의 3분의 1이상이 동의하는 ‘특별결의’가 필요한데 국내 기업이 대부분 지분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개정 과정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부결 사태도 나타나고 있다. 시큐어소프트의 경우 초다수결의제 관련 안건이 주총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적대적 M&A 전략에 보완도 필요하다. 대현회계법인 구봉민 이사는 “경영권 공격이 잦아진 데 비해 국내 기업은 예비적 방어수단을 갖추지 않아 경영권 공격에 취약한 상태”라며 “적대적M&A 대상이 됐던 기업이 주로 이용한 방법은 공격 받은 후 자사주를 매입하는 ‘사후약방문식’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전에 방어수단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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