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휴대폰은 만능이다. 사진·e메일·동영상·TV까지 한 대면 모두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첨단 휴대폰에도 변하지 않는 원시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전력을 공급받는 문제, 즉 충전 부분이다. 휴대폰으로 여러 가지를 하다보니 하루라도 충전을 거른 날이면 전원이 꺼질까 노심초사한다. 언제 어디를 가도 휴대폰이 자동으로 충전될 순 없을까. 무선 전력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5m까지 쏜다’=작년 연말 미국에선 무선 전력을 기대할 수 있는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됐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MIT) 마린 솔자식 교수팀은 노트북PC, MP3플레이어 배터리를 3∼5m 떨어진 곳에서도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얘기는 비록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근거한 것이지만 꽤 먼 거리에서도 무선 충전이 가능하다고 해 큰 관심을 모았다. 이 기술은 ‘공진(resonance)’을 이용했다. 공진이란 어떤 물체가 외부에서 그 고유 진동 수(초당 진동 횟수)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힘을 받으면 진폭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진동 수가 같은 두 개의 소리굽쇠를 가까이 두고 하나를 때리면 다른 소리굽쇠가 울리는 것이다. 솔자직 교수팀은 소리 대신 전기 에너지를 담은 전자기파를 공진시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고 했다. 에너지 분산을 막기 위해 고안한 특수 안테나를 전원부와 노트북에 각각 설치한 후 전류를 흘리면 공진에 의해 두 개의 안테나 사이에서 에너지가 전달되고 이를 통해 충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층 가까워진 무선 충전=솔자직 교수팀의 논문은 아직 이론적인 얘기지만 세계에선 무선 충전이 눈 앞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올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 2007’에선 세계 여러 기업들이 이를 증명해 보였다. 애리조나에 있는 와일드차지와 미시간 풀톤 이노베이션은 어댑터가 없어도 휴대 가전들을 충전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와일드차지는 휴대폰·MP3플레이어·디지털 카메라·노트북 등 다양한 종류의 휴대기기들을 마우스패드와 같은 장치 위에 올려 놓으면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와일드차저(WildCharger)’를, 풀톤 이노베이션은 유도전류를 응용한 무선 충전 기술 ‘이커플드(eCoupled)’를 발표했다. 이커플드의 원리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동칫솔의 충전 방식과 같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파워캐스트는 900㎒ 대역 RF통신을 통해 밀리와트(mW) 단위의 작은 전력을 최대 1m까지 전달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꿈은 이뤄지나=무선 충전, 즉 무선으로 전력을 전송하기 위한 시도가 최근의 일은 아니다. 에디슨을 뛰어 넘는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19세기 물리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대형 안테나를 통해 전기를 무선으로 전달하는 실험을 한 바 있으며, 영국의 스플래쉬파워는 2002년 전자기파를 이용해 휴대폰·MP3플레이어 등을 충전하는 패드를 일찍이 고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가·발열·효율 등의 문제로 이 같은 무선 충전 기술이 그동안 상용화되진 못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가전 업체들이 신기술들을 적극 채택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파워캐스트는 필립스와 제휴를 맺고 연내 필립스 가전 제품에 자사의 충전 기술을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풀톤 이노베이션은 세계적인 자동차 전장 업체인 비스테온과 함께 휴대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차량용 무선충전 장치를 올 여름 내놓을 계획이다. 풀톤은 또 모토로라·모빌리티 일렉트로닉스와 제휴를 맺고 자사의 무선 충전 기술을 산업 표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무선 충전 기술들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고 또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지만 모바일 시대를 맞아 충전 기술에도 변화가 시작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내 휴대폰도 무선 충전한다?` ‘내 휴대폰도 무선으로 충전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있다. 단 ‘011’과 ‘삼성’ 휴대폰 사용자야 한다. 먼저 ‘5, 8, 0, 9, 5, 4, 0’을 순서대로 누른 후 ‘*’와 ‘4, 5, 6, 8, 0’을 추가로 입력한다. 또 이어서 ‘7, 0, 1, 1, 4’와 휴대폰의 ‘확인’ 버튼을 누르고 마지막으로 ‘0, 2’를 입력하면 휴대폰 배터리 눈금에 불이 들어온 것(완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충전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제조사가 휴대폰을 출하하기 전 품질 검사를 위해 테스트 모드로 들어가 확인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테스트를 위해 전압을 낮추는데 기준 전압이 낮아지면서 순간적으로 배터리 눈금이 다시 올라가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에서는 이 번호들이 ‘배터리를 무선 충전하는 법’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잘못 다루면 휴대폰을 고장낼 수 있다.
◆국내 현황은 특허청 산하 특허정보원 사이트에서 ‘무선 충전’으로 관련 특허를 찾아보니 총 10건이 검색됐다. 이 중 최종 특허로 등록된 것은 6건뿐이었고 나머지는 현재 공개 중이거나 포기 또는 거절된 상태였다. 무선 충전에 관한 국내 기술 개발은 표면적으론 그리 활발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도 무선 충전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회사가 있다. 지난 2001년 안동대학교 교수 벤처기업으로 설립된 ‘제이씨프로텍’이다. 현 안동대 전자공학 교수이자 JC프로텍 대표인 이형주 사장이 개발한 것은 미국 와일드차지, 영국 스플래시파워와 유사한 ‘무선 충전 패드’다. JC프로텍의 제품은 코일로 감싸진 송신부 역할의 패드와 같은 코일로 된 수신 모듈로 구성됐다. 송신부에 전원을 넣으면 이곳에서 나오는 방사 전파의 자기장을 수신 코일부에서 받아 들여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 법칙에 의해 전기로 변환, 배터리가 충전되는 방식이다. 이런 원리를 통해 패드 위에 휴대폰이나 MP3플레이어 등을 놓기만 하면 자동 충전이 된다. 특히 최대 네대까지 휴대기기들을 동시에 충전할 수 있어 여러 개의 어댑터를 쓸 일이 없어진다. 이 사장은 “자기장의 전달 효율이 낮아 해외업체들도 이를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우리는 특수 설계한 코일 구조로 80∼90% 효율을 확보했다”면서 “충전 시간도 유선과 동일하고 사용 시간도 유선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무선 충전 상용화의 또 다른 관건이던 가격 문제도 해소해 패드 1개와 수신 모듈이 내장된 외장형 배터리 2개를 총 2만∼3만원에 시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이 사장은 말했다. 현재 JC프로텍은 아이팟용으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미국 모 기업과 제휴를 논의하고 있으며 6개월 후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기장에 따른 인체 영향에 대해서는 “FCC 및 CE, 스웨덴의 전자파 규제를 모두 만족시켜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며 “50cm 정도 떨어져 있어도 충전이 가능한 기술도 연구 중에 있다”고 전했다. 윤건일기자@전자신문, ben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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