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을 표방하면서 고려 문화를 혁신하고자 한 첫 세대는 안향(安珦, 1243~1306), 백이정(白餌正), 우탁(禹倬) 등이다. 안향과 백이정은 원나라에 가서 신유학을 받아들이고, 우탁은 나라 안까지 들어온 신유학 서적을 남보다 앞서 이해하고 풀이했다 한다. 이와 함께, 도리를 밝히는 교육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한 풍속과 행실을 타파하는 데 앞장서는 것을 공동의 과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직은 저작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사상을 전개할 단계가 아니었고, 문학에서 이룬 바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동문선>에 실인 우탁의 시 몇 편이 관심을 끌 따름이고, 멀이 안동까지 가서 <영호루>라는 제목을 걸고 지은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앞뒤 시기 다른 몇 사람이 영호루를 두고 지은 시와 견주어보면, 그 근처에 사는 농민의 생활에 대해서 구체적인 관심을 가진 데 특색이 있다. 전문이 다음과 같다.
嶺南游蕩閱多年 영남을 여러 해 동안 두루 돌아다니면서,
最愛湖山景氣加 이 물가 산의 경치를 가장 사랑하네.
芳草波頭分客路 풀 향기러운 물결 머리 나그네 길 갈라지고,
綠楊堤畔有農家 버들 푸른 둑 곁에 농가가 있구나.
風恬鏡面橫煙黛 바람 잔 거울 위로 눈썹 연기 비끼었고,
歲久墻頭長土花 오랜 세월 담 머리에 흙꽃이 자랐구나.
雨歇四郊歌擊壤 비 갠 뒤에 사방 들에서 격양가 노래할 때,
座看林?漲寒? 숲가로 밀린 차가운 뗏목을 앉아서 본다.
좀더 풍부하고 절실한 저작활동과 작품세계를 보자면 다음 세대의 출현을 기다려야만 했다. 최해, 안축, 이제현은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나 서로 비슷한 경력을 쌓으면서 다음 세대의 주역 노릇을 함께 했다. 원해 시골 향리에 지나지 않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자기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과거에 급제했을 뿐만 아니라 원나라에 가서 크게 인정받았던 것이 그럴 수 있었던 조건이다. 최해와 안축은 원나라 과거를 거쳐 그곳에서 벼슬한 바 있으며, 이제현은 충선왕을 따라 연경에 가서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교류하며 명성을 떨쳤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은 성리학을 앞질러 표방하느라고 굳어진 의식을 갖기 보다는 화려한 진출의 이면세서 문제가 된 그 시대의 고민을 자기 자신의 체험과 함께 절실하게 다루는 문학에 더욱 힘썼기에 앞 시대와는 다르게 문학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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