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다시 현장입니다.” 후지쯔 안팎 살림을 책임지는 구로카와 히로아키 사장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결연했다. 그의 메시지와 인터뷰 내용은 곱씹어 볼수록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공격적인 경영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2000년 후지쯔는 최고 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일본 닷컴 버블, 미국 통신 버블, Y2K 대응 수요가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바로 다음해 거품은 사라지고 미국 통신 과잉 투자가 확실시되면서 후지쯔도 거액의 손실을 냈습니다. IT 투자 역시 투자 대비 효과를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는 이제 IT가 경영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경영과 ‘한몸(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T와 경영 일체화는 현장 혁신을 통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장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사람· IT· 공정(프로세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현장이고 언제나 혁신을 요구합니다.” 모든 프로세스를 매뉴얼화할 것, 비즈니스 전 공정을 가시화해 서로 공유할 것, 분기·월 단위가 아닌 시간·분 단위로 관리할 것 등은 그가 꼽은 현장 혁신의 3대 조건이다. 구로카와 사장은 후지쯔 스스로 현장 혁신의 가장 큰 레퍼런스가 되겠다며 내부 혁신 작업에 대대적인 자원을 투자했다. 현장 전문 지도자 70명 양성하고 기간계 시스템을 변화에 강한 서비스 기반 오리엔트(SOA) 아키텍처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전 제품 공정에는 후지쯔의 최대 고객이기도 한 도요타의 생산방식을 도입해 원가 절감에도 나섰다. “이제 사람과 물건이 움직이는 곳이면 어디라도 IT가 숨어있습니다. 여행·오락, 의료·간호, 교육 현장 등 일상생활에도 IT가 급속히 파고 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큰 시장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IT가 파고든 일상생활을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사회’로 명명했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무선 기술은 앞으로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부상할 것입니다. 후지쯔는 이 분야 상당한 투자를 단행했으며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핵심 부품, 전자태크(RFID)를 활용한 다양한 솔루션이 대표적이지요.” 구로카와 사장은 ‘제2의 후지쯔 글로벌화’도 선언했다. 이미 후지쯔는 전세계 70개 진출, 종업수만 15만8000명(해외 5만영)을 둔 손꼽히는 다국적 IT업체다. 그래도 그의 평가는 냉정했다. “해외 매출 비중이 아직 30%대에 불과하다”면서 “2009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50% 선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덧붙였다. 후지쯔는 메인프레임부터 유닉스 서버·대소형 인텔 서버는 물론 PC·스토리지, 미들웨어와 네트워크까지 자체 개발해 서비스와 함께 제공하는 ‘토털 밸류 체인(Total Value Chain)’을 지니고 있지만, 규모의 경제를 이룩해야 더 많은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구로카와 사장의 설명이다. “지난 6월 미국·아시아태평양· 중국·유럽 및 중동 아시아 4개 지역별로 총지배인을 임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른바 ‘지역주의 전략’을 내놓은 것도 글로벌 매출 확대를 위한 포석입니다.” 그가 내놓은 지역주의 전략이란 각 지역별로 총괄 책임자가 본사에 준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지역 후지쯔 계열사를 총괄하면서 경영성과를 철저히 책임지도록 한 전략이다. 전세계 시장 단위로 서버·스토리지·PC 등 제품 공급이 이뤄지겠지만, 서비스와 솔루션 공급은 철저하게 지역 단위로 특성에 맞게 진행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지역 단위의 공격적 제휴와 인수합병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후지쯔는 대형 인텔 서버 판매를 위한 미국 EDS와 제휴를 맺었고 후지쯔 미국법인 주도로 미국과 인도에 컨설턴트 2000명을 보유한 컨설팅업체 라피다임도 인수했다. 후지쯔는 국내 보안업체 티에스온넷에도 10억원을 투자했는가 하면 수백 억 원을 투자, 고객이 해당 지역에서 직접 후지쯔 솔루션을 검증해볼 수 있는 ‘플랫폼솔루션센터(PSC)’도 한국·싱가포르·중국·홍콩에잇따라 열었다. 철저한 지역주의 전략이다. 구로카와 사장은 아시아의 가치에 대해서도 ‘재발견’을 주문했다.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3개국은 거대한 IT시장 및 선진적인 기술과 고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3국이 협력한다면 세계의 IT산업을 주도하고 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지요. 특히 모바일(4세대)·유비쿼터스 컴퓨팅·IPv6·차세대 브로드밴드·디지털 홈네트워크 분야에서 한·중·일 3개국이 세계 표준을 주도해 나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는 국제 전자상거래, 통관 수속 자동화, 전자태그를 이용한 물류 통합 등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한 선진 프로젝트를 3국이 협력해 시험적으로 실행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에서 기술자·연구자·마케팅 담당자, 거기다 실제 사용자에 이르는 인력 교류가 필요합니다. 후지쯔는 이러한 활동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공헌하고 싶습니다.” 특히 그는 “고품질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한국 기업과는 지속적으로 협력관계를 추진해 나갈 계획”라면서 “소프트웨어 분야는 물론 생체 인증 기술, 로봇 분야에서도 협력한다면 양국 기술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도쿄=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구로카와 히로아키 사장은... 구로카와 히로아키 후지쯔 사장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67년 후지쯔에 입사했다. 후지쯔 사상 최초의 문과 출신, 서비스 엔지니어 출신 사장이었던 아키쿠사 나오유키 전 사장(현 회장)의 뒤를 이은 소프트웨어· 서비스 부문 전문가다. 소프트·서비스 사업 본부장, 네트워크 서비스· 시스템 서포트 본부장을 거쳐 2003년 후지쯔 대표이사 사장 경영 집행역에 올랐다. 후지쯔 안팍에서는 구로카와 사장의 선임을 후지쯔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사업 부문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최고 가치와 지침은... 후지쯔인들은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까. 이는 후지쯔가 명문화해 선포한 ‘후지쯔의 길(The Fujitsu Way)’에 잘 드러나 있다. 후지쯔의 길은 그룹의 경영이념과 가치관, 윤리관을 축약해놓은 것으로 후지쯔 본사와 계열사, 관계사들이 모두 공유하면서 후지쯔의 브랜드를 높이는 받침대 역할을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후지쯔가 최고 가치와 지침으로 5가지를 내세우고 있는 데 고객, 이익과 성장, 인재, 품질와 함께 환경을 꼽았다는 점이다. 후지쯔는 환경이라는 가치를 설명하면서 `모든 것을 그린(Green)으로 만듭니다`라는 부제까지 달았다. 실제로 후지쯔는 녹말을 원료로한 노트북 본체를 개발하는 등 친환경, 저저력 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97년부터는 동남아시아의 우림을 살리기 위한 녹화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번 후지쯔포럼 2006에도 식물성 플라스틱을 사용한 노트북 PC ‘FMV-BIBLO NB80S’를 선보였고 ‘슈퍼그린제품’이라는 별도 부스를 통해 에너지 절약률과 환경공헌재료 사용률이 높은 제품을 모아 전시하기도 했다. 후지쯔는 “오늘날 환경에 올바르게 대응하고 준비하는 것은 중요한 경영 과제 중 하나”라면서 “제품 설계 및 제조과정에서의 에너지 절약은 물론 부품과 자재조달·출하·판매 및 회수에 이르는 제품 전 주기에서 광범위한 친환경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후지쯔 테크놀로지 이즈 필드 이노베이션......” 후지쯔 포럼 2006이 열린 지난 5월 일본 도쿄 국제포럼장. 일본어 억양이 진하게 밴 영어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후지쯔포럼은 매년 1회 후지쯔의 기술력과 전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행사. 전시회와 세미나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올해 후지쯔포럼 2006 주요 행사는 후지쯔포럼 사상 처음으로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본사 임원들은 영어로 된 원고로 발표에 나섰고 무대 뒤에서는 전세계에서 온 고객과 미디어를 위해 통역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후지쯔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후지쯔의 글로벌 매출 확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상징적인 대목이라고 평했다. 각국에서 온 관람객들은 기업 행사를 국제 행사로 탈바꿈시킨 진행 솜씨도 솜씨지만, 후지쯔가 내놓은 차세대 제품 자체도 알찼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 U-저팬 이끄는 후지쯔 = 후지쯔포럼 2006 전시관의 테마는 ‘필드 이노베이션(현장 혁신·Field Innovation)’이다. 비즈니스 혁신관과 생활혁신관 2개관 총 84개 부스에는 소재·반도체·하드웨어·소프트웨어·통신·서비스를 융합한 기술이 다채롭게 선보였다. 행사 담당 요원이 전자태그(RFID)가 부착된 옷감을 세제를 푼 물에 담그고 빨기 시작하자 관람객들의 절로 나왔다. 후지쯔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섬유(마) 소재 RFID다.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고 열·물·화학품에도 강하다. 다음 코너에는 휴대전화를 이용, 바코드를 읽고 영업 보고서도 작성가능한 신개념 모바일 미들웨어가 등장했다. 중앙서버에서 원격 조정이 가능한 CAD 솔루션에서 종이처럼 얇고 유연한 컬러 전자종이에 이르기까지 후지쯔의 R&D 범위는 방대했다. 후지쯔의 이러한 기술은 일본 정부가 유비쿼터스 사회 구현을 위해 추진하는 U-저팬 프로젝트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후지쯔는 U-저팬 프로젝트를 이끄는 정부 컨소시엄에서 일종의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것. 도쿄 가스미가세키에 위치한 후지쯔 상설 전시관 ‘넷커뮤니티(netCommunity)’에는 후지쯔가 구현한 U-저팬 프로젝트의 사례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전자태그를 활용, 어린 자녀의 등하교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한 사립학교, 쇼핑과 동시에 물품 가격을 계산하고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한 스마트 카트 , 전자페이퍼를 활용한 도시 정보 제공 시스템 등 대표적인 U-저팬 프로젝트 사례. 2000년 개관한 넷커뮤니티 방문자수도 1만 5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넷커뮤니티 담당 후지쯔 관계자는 “후지쯔는 유비쿼터스 사회에서 필요한 기술 테마를 △안전·안심 △간단·편리 △변화감지 및 대응 등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이에 대한 기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있다면서 “일본은 후지쯔와 같은 기업과 정부의 노력으로 이미 전세계에서 인터넷 초고속 통신료가 가장 싼 나라로 변모하고 있고 유비쿼터스 사회에도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집스러운 R&D 투자가 융합 기술의 원천 = 후지쯔는 일본 내에서도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본사 건물은 물론이고 일부 생산라인까지 대부분 임대하거나 아웃소싱해 쓴다. 부동산에 목돈을 들이기보다는 연구개발(R&D)에 우선적으로 투자해 왔다. 후지쯔는 전세계적으로 1,500개의 연구시설과 1만1500명의 엔지니어, 3만2000개의 특허를 보유 중이다. 올해 후지쯔 R&D 투자 총액은 2조 5500억원. 최첨단 미래기술만 개발하는 후지쯔 연구소의 올해 예산만도 4000억원이다. 후지쯔가 별도 자본금을 투자해 설립한 후지쯔 연구소는 일본 내 산하 연구센터 7개, 유럽과 미국, 중국 소재 연구센터 3개로 구성돼 있다. 무라노 가츠오 후지쯔 연구소 소장은 “그리드컴퓨팅·오가닉스토리지·45나노미터 반도체·IP기반 음성 통합솔루션·최신 표준기술을 활용한 영상 코딩 기술 등 신소재부터 반도체·네트워크·시스템·솔루션에 이르는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 중”이라면서 “2010년에는 1초당 1페타바이트(1000조)회 연산이 가능한 페타플롭스급 슈퍼컴퓨터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정밀도 바이오메트릭스를 활용한 보안기술, 저전력 전자페이퍼, 디지털 방식의 실물 모형 기술, 업무프로세스모델링기술, RFID태그기술 등은 이미 상용화됐거나 상용화 준비가 끝났다. 한국후지쯔 직원들은 후지쯔는 일본 기업들의 숨은 저력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한국 기업이 통신과 반도체 등 몇 가지 특화 기술과 응용 기술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반면, 후지쯔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은 다양한 융합 제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아시아 출신 기업 한계는 없다= 후지쯔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컴퓨팅 분야는 전통적으로 미국 기업이 강세다. 90년대만 해도 유럽 컴퓨터 업체들도 맹위를 떨쳤지만, 2000년 들어서면서 전세계 컴퓨터 산업이 미국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 언론들은 더욱 후지쯔를 주목하고 있다. 후지쯔는 전세계 컴퓨터 산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극소소의 아시아 기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후지쯔는 독일 지멘스와 기술 협력, 영국 ICL 주식 80% 매입,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제품 공동 개발 등을 통해 활동반경을 넓혀왔고 일본 내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미국 기업이 아닌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전세계 톱 5 컴퓨팅 회사 반열에 올랐다. 구로카와 후지쯔 사장은 “일본은 전세계 시장의 10% 밖에 안되는 좁은 시장”이면서 “후지쯔는 2010년까지 미국 시장에서 톱 10위, 아시아 전체 시장에서도 톱 2위까지 올라선다는 목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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