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만 살피면 표준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는 비교적 순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무 탑재 1년 만인 지난 3월 위피폰 보급량이 1000만대를 넘어섰고 응용 애플리케이션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불안한 호환성,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 등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곪은 상처가 금방 드러난다. 눈을 글로벌 시장으로 돌리면 위피의 위상은 금세 초라해진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왜곡된 표준 제안 체계를 개편하는 데만 2년을 꼬박 허비했다. 그간 표준 업그레이드는 사실상 휴업 상태였고 최신 버전도 지난 2004년에 내놓은 버전 2.0에서 정지된 상태다. 반면에 휴대폰 소프트웨어(SW) 시장으로 공세를 강화하는 퀄컴을 비롯해 노키아·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거대 기업의 행보는 눈이 부실 정도다. ◇무선 시장 대권 꿈꾸는 퀄컴=퀄컴은 플랫폼 시장 진출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기술을 상당 부문 참조했다. 하지만 이제는 ‘브루’의 기능을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지능형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응용 애플리케이션 분야로 확장시켰다. ‘딜리버리원’ ‘유아이원’ ‘마켓원’ 등 이동통신사의 필요에 따라 제공하는 상품도 토털 솔루션 수준이다. 최근에는 CDMA 서비스를 선보인 지 10년 만에 기존 실시간 방식 운용체계(OS)인 ‘렉스’ 대신 리눅스 계열의 ‘L4’를 도입하기로 했다. 퀄컴이 휴대폰 OS를 변경한 것은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유연한 체계로 전환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 OS와 ‘브루’ 플랫폼을 유기적으로 연동시켜 SW 분야에서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거대한 야심이 깔려 있다. ◇로드맵이 없다=노키아의 ‘심비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 등의 행보도 퀄컴 못지않게 민첩하다. 물론 위피가 단일 기업의 상품이 아니라 국가 표준이라는 점에서 발전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피는 속도뿐만 아니라 발전 로드맵 자체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위피는 아직 개발 초기 휴대폰에서 콘텐츠를 다운로드하는 버추얼머신(VM) 기능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앞으로 세계적 추세대로 OS로 발전해야 할지, 특화된 미들웨어로 살아남을지 발전 방향 자체도 정해진 게 없다. 지나치게 이통사에 의존해 규격을 개발하다 보니 당장 필요한 기능을 제외하고는 표준화에 큰 진전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다. ◇OS냐, 특화된 미들웨어냐=OS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리눅스를 활용, 기존 위피와의 유기적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SW 설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특화된 미들웨어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그 나름의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무선인터넷 시장은 CDMA·GSM·WCDMA·모바일와이맥스·DMB·DVB-H 등 다양한 네트워크가 상존하고 이를 지원하는 듀얼밴드 단말기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상호운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네트워크와 OS를 가진 단말기라도 위피라는 미들웨어를 탑재하면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을 언제든 호환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발전 방향이 어느 쪽이든 로드맵을 찾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우리의 능력을 냉정히 판단하고 무선 분야의 글로벌 트렌드를 분석해 방향을 정해야 한다. 당연히 시장 조사도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위피 개발 5년째를 맞았지만 표준 플랫폼 도입 후 국내 시장에 미친 효과를 입증할 만한 자료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의무화 정책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뿐만 아니라 발전 방향 제시가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위피 개발업체의 한 관계자는 “표준화기구의 주먹구구식 운영, 소모적인 합의 절차 등은 모두 위피의 개발 로드맵이 없기 때문”이라며 “향후 정부 정책의 명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시장 조사와 이를 토대로 한 로드맵 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훈기자@전자신문, t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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