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신산업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도 발빠른 행보를 걷고 있다. 이미 10년 후를 내다보는 중장기 청사진이 나왔고 관련 부처의 조직개편도 이뤄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미래 먹거리인 융합신산업 육성을 위한 범정부적인 협력이다. 여기에 민간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 각계각층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디지털전자에서 보여준 성공신화를 21세기 엘도라도로 떠오르고 있는 융합신산업 시장에서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전자 세계 3강의 열쇠 ‘융합신산업’=정부가 융합신산업 육성을 추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블루오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전자 산업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재도약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와 휴대폰, 디스플레이 3인방이 차지하는 디지털전자 수출 비중이 67%에 달해 자칫 이 중 하나가 부진하면 전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2015년 디지털전자 세계 3강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디지털전자 일변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 해답은 부품 소재 기반의 융합신산업이다. 융합신산업은 세계 시장 규모가 2010년에 2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융합신산업은 아직 겸증된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이 크고 산업화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성공하면 시장을 선점, 막대한 부가가치를 낼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이기 때문에 소득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내는 질 좋은 성장도 이끌어낼 수 있다. ◇키워드는 중소기업, 범정부 협력, 선발자=이처럼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융합신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는 선발자(First Mover), 중소기업 중심, 국가 R&D 역량 결집이라는 세 가지 추진 전략을 세웠다. 선발자 전략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융합신산업 분야에서 경쟁자를 따돌리고 앞서간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부품 소재 분야에서 선발 국가를 따라가는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을 펼쳐왔지만 새롭게 등장한 융합신산업에서는 핵심 원천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국제 표준과 특허를 선점,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한다는 청사진이다. 예를 들어 IT와 NT가 결합된 나노광전소자 원천 기술을 우리가 갖게 되면 가시광이미지센서나 적외선이미지센서, 바이오센서 등의 융합 부품을 만들 수 있고 이는 다시 휴대폰, 캠코더, 원격의료기, 기상관측시스템, 군사 장비, 질병진단시스템 등 다양한 수요처가 만들어진다. 중소기업 중심은 정부의 융합신산업 두 번째 전략이다. 우선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핵심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국제 표준과 특허를 선점, 사업화의 위험성을 최소화한 후 이를 중소기업과 함께 사업화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통해 기술주도형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국가 R&D 역량 결집은 막대한 재원과 여러 가지 기술이 합쳐지는 융합신산업의 특성상 이를 효과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범정부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정세균 산자부 장관은 “연구기관 간 공동 연구 개발 환경을 만들기 위해 IT와 BT, NT 분야의 주요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융합산업기획단을 조만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세 가지 추진 전략을 통해 오는 2015년까지 핵심 원천 기술 50건, 융합 부품 소재 300개, 국제 표준 30건, 국제 특허 100건을 확보, 관련 제품 수출 3000억 달러를 달성하고 디지털전자 산업 세계 3강에 들어간다는 비전을 세웠다. ◇기술 및 제품 개발에 3000억원 투자=아무리 거창한 밑그림을 그려도 이를 힘있게 추진할 재원이 없으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융합신산업 육성을 위해 약 3000억원의 예산을 잡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지만 정부는 융합신산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 중소기업 재정계획이나 국가 R&D 프로그램의 예산을 끌어서 적극적인 확충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이 가운데 1200억원이 사업 1단계인 2011년까지 쓰이고 나머지는 2016년까지 집행된다. 핵심 원천 기술 개발에 사업비의 60%를 할당하고 나머지 40%는 융합 부품 소재 개발에 투입된다. 정부는 우선 융합신산업 육성 원년인 내년에 200억원을 들여 20개 연구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돈은 정부 출연 방식으로 연간 10-15억원 내외의 개발비가 5년 동안 지원된다. 정부는 융합신산업 육성으로 다양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먼저 산업적 효과는 50개 고부가 융합 부품 소재 개발과 중핵기업 50개 육성으로 반도체와 휴대폰, 디스플레이에 편중된 산업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융합신산업의 특성상 전후방 산업의 연관효과가 크고 폭발적인 시장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출 500억 달러와 10만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효과도 가능할 전망이다. 특히 성장 시장의 국제 표준을 선점해 시장 지배력을 높여 기술 무역 역조를 개선, 2015년 이후에는 1억 달러 이상의 로열티 수입이 예상된다. 또 국제 특허 확보로 인해 최근 잦아지는 국제 특허 분쟁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
◆기고-`융(融)의 시대` 도전과 기회 -정세균 산자부장관 정보기술(IT)시대 이후에 찾아올 미래사회의 메가트렌드는 IT와 바이오기술(BT)·나노기술(NT) 등이 융합된 ‘융합기술(퓨전 테크놀로지)’이라는 전망이 제시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융합기술이란 IT를 필두로 나노기술·생명과학기술 등 신기술 분야의 상승적 결합을 통해 그동안 개별 기술이 넘지 못했던 과학기술적 한계를 극복, 기존 제품의 성능을 향상시키거나 신산업을 창출하는 새로운 기술을 의미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소설 ‘환상의 항해’를 영화화한 ‘이너 스페이스’에 등장하는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는 작은 잠수정이나 마이클 베어 감독의 ‘아일랜드’에서 선보인 클론(복제인간)의 수면 장애와 영양 상태를 감지하는 ‘생체인식기술’이 융합기술의 미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융합기술 분야의 국내 기술수준은 아직 선진국의 70∼80%정도에 불과하고 관련 전문가도 많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이 분야는 시장의 불확실성에 따른 투자 리스크가 크고 녹아드는 기술이 매우 다양하며, 산업화에도 장기간 소요되어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업화 역사는 짧지만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을 이룩해온 저력과 세계적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 나간다면 새로운 융합기술 분야에서도 선발자로 나설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성공신화가 좋은 예다. 국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도체 시장에 불황이 닥쳐왔다. 그 당시 D램을 생산하던 세계적인 기업들 대부분이 사업을 철수하거나 감량생산을 했지만 우리 기업은 미래에 대한 통찰과 결단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보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 세계 유수의 D램 업체로 성장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전략적 사고로 미래를 준비했던 ‘반도체의 성공신화’를 재현해 나가야 할 때다. 산업자원부는 미래 융합 신산업 육성을 위한 조직과 체계를 재정비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단행한 조직개편을 통해,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기술 산업간 융합화’ 추세를 주도하고 미래의 먹거리 산업을 창출해 나가기 위해 디지털융합산업팀·나노바이오팀·로봇팀·반도체디스플레이팀 등으로 구성된 ‘미래생활산업본부’를 출범, 본격적인 진용을 갖췄다. 또 올해 내에 IT·BT·NT 분야 전문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대학·기업 등이 참여하는 ‘융합 신산업 기획단’을 구성해 범국가적인 연구개발 역량을 결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융합기술의 연구개발을 담당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향후 10년간 3000억원 수준의 재원을 확보해 융합부품 및 소재분야의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해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손자병법 허실편에는 ‘적국(월나라)의 병사의 수가 많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환경이나 조건보다 ‘자신감’이 성패의 본질임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융(融)의 시대’의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맞이하여 한국적 열정과 자신감으로 선발자로 나서는 큰 걸음을 내디뎌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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