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 후, 사람들은 진공청소기가 알아서 집안을 청소하고 세탁기가 정해진 시각에 옷을 빨며 주방기기가 사람처럼 말을 걸어오는 이른바 ‘생명을 흉내 내는 물건들’이 갖춰진 아파트에 살게 된다. 이쯤 되면, 말벗도 필요없다. 텔레비전과 하이파이 오디오 세트가 서로 집주인을 즐겁게 해주겠다고 다투고 아침 식사 중에는 주전자가 밀크 커피를 권하면서 날씨 얘기를 꺼낸다. 주변 사물이 스스로 주관을 갖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철저히 집주인의 의사를 반영한 맞춤형 환경을 구현한다. 미국 MIT 공대 미디어 랩(Media Lab)에는 ‘방첩활동(Counter intelligence)’이란 이름의 실험실이 있다. 아파트 부엌 모양의 이 연구실에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부엌의 크고 작은 모든 기기와 사물을 지능형 설비로 만드는 연구 작업이 한창이다. 미래의 부엌(Kitchen of the future)을 건설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부엌의 요리기기들로 하여금 사용자들에게 요리 방법과 필요한 요리 재료가 무엇이며 얼마의 양을 넣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출발. 그래서 전자태그(RFID)를 모든 요리기구나 병에 부착해 언제, 어떤 양념들을 넣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4컵의 양념 소스를 부어야 하는 경우 ‘한 컵, 두 컵, 세 컵째입니다. 조금만 더 부어주세요. OK 되었습니다. 그만 부으세요.’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양념통 뚜껑에 센서를 부착하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금방 파악된다. 또 용기 안의 양념 요소나 음식의 온도를 추적하면 언제 상하는지, 상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냉장고에는 비디오 카메라와 컴퓨터가 부착돼 그 안의 모든 내용물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해 준다. 버터를 다 사용하면 냉장고는 자동으로 쇼핑 리스트 품목에 올리고, 사용자는 클릭 한번으로 인터넷을 통해 쇼핑 리스트의 물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실험이 요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스푼(spoon)이다. 양념들을 섞고 맛을 보거나 색깔을 볼 때 스푼이 모든 요리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곳에서 개발중인 오븐 미트(oven mitts)는 온도 센서를 통해 ‘40분 내에 반드시 음식을 체크하라’는 메시지도 전달해준다. 유비쿼터스 세상에서는 정보가 자유롭게 흘러다닌다. 생활 속 모든 사물에 컴퓨터와 네트워크 장치가 심어져 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유비쿼터스 세상을 먼 미래 얘기로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람과 컴퓨터, 그리고 사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환경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인터넷과 가전이 융합돼 TV로 전자상거래를 하고 휴대폰으로 가스 밸브를 잠그는 신개념 주거 환경, 이른바 u-아파트(ubiquitous-Apartment)가 대표적이다.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들 대부분이 외부에서 휴대전화로 전기밥솥에 조리를 지시하면 집에 들어가 따듯한 밥을 곧바로 먹을 수 있다. 전자레인지, 냉장고, 에어콘, 샤워기 등도 원격 제어가 가능해 집에 들어가자마자 편안한 서비스를 받는다. 방범, 방재도 디지털 기기들이 맡는다. 외출 이후 댁내에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관련 동영상을 사무실 PC나 휴대전화로 보내준다. 집주인은 이를 원격지에서 파악하고 침입자임이 확인되면 단축키 하나로 인근 경찰서에 신고된다. 도둑 잡는 것만 아니라 누전 등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면 인근 소방서에 자동으로 신고돼 대형 사고도 막아준다. 휴일에 TV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사람들에게 디지털 홈은 더욱 희소식이다. 비디오가게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DVD급 영화를 다운받아 대형 TV로 시청할 수 있다.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이 찬 시계가 어떤 회사 제품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살펴본 뒤 즉시 구매할 수 있다. 주거 환경과 함께 대표적인 공공장소인 거리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서울시가 건설중인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중심가에는 첨단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 제품들로 구성된 ‘디지털 미디어 스트리트(DMS)’가 조성된다. 이곳에는 인터넷 가로등(IP-Intelight), 미디어 광고판(Media Board), 첨단 정보 키오스크(Info-booth) 등이 설치되고 전세계 도시의 실시간 현황을 볼 수 있는 세계의 창(Window to the World)과 실물 없는 가게인 인터넷 상점(Thin Shop), 첨단버스안내시스템(Info-bus station e-board)이 도입될 예정이다. 이중 첨단 가로등은 내장된 센서에 의해 보행자의 접근이나 움직임 정도에 따라 조도 및 색감이 다양하게 조절되고 DMC 전체 지역에 무선랜 기능을 제공하는 역할(Access Point)을 맡는다. 첨단 정보 키오스크는 공중전화기, 현금지급기, 웹 키오스크, PC방이 결합한 가로형 종합정보센터 기능을 수행한다. 인터넷 상점은 인터넷과 전통 상점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상점이다. 매장 직원이 근무하고 실제 상품이 진열되지만 실질적인 상품 주문은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고객이 주문한 상품은 오프라인 창고에서 직접 배송 된다. 또한 건물 설계시부터 건축물과 일체화 되도록 벽면에 첨단광고판(Media Board)이 설치돼 상가 내 매장 광고는 물론 영상 및 아트 방송이 이루어진다. 컴퓨터가 인간의 삶에 들어온 것은 불과 60년 정도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컴퓨터는 사람들의 일터와 주거공간, 공공장소에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생활패턴과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지금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생활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
◆인터뷰-장영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미래 유비쿼터스 환경은 첨단 기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첨단 기술의 편리함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도시사회 분야를 전공하는 장영희 선임연구위원은 첨단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의 보편화’가 미래 유비쿼터스 환경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장 연구원은 지난 98년부터 서울시가 추진해온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DMS)’ 건설 계획을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해온 장본인. 그가 DMS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가장 많은 고민을 한 부분도 ‘기술이냐, 디자인이냐?’의 문제다.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기술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사물 속에 숨어 있어야 한다면 결국 남은 문제는 디자인”이라는 게 장 연구원이 내린 결론이다. 첨단 기술의 보편화와 창의적인 도시 환경 설계가 중요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DMS에서는 건물 1·2층이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거리 곳곳에서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건물 벽면에 설치된 첨단광고판(Media Board)을 이용한 영상 아트 방송은 그 자체가 거리 예술이다. 이는 미래 유비쿼터스 환경에서는 첨단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한국이 최소한 IT강국이라고 한다면 미래 유비쿼터스 환경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DMS와 같은 거리를 몇 개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장 연구원의 DMS 구현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그러나 최근 주요 지자체들 사이에 일고 있는 유비쿼터스 도시 건설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점도 많다. 장 연구원은 “차별화된 전략이나 구체적인 내용 없이 단순 정보화 사업이 u시티 사업으로 포장된 사례도 간혹 있는 듯하다”라며 “한탕주의식 u시티 프로젝트가 아니라 첨단 기술의 보편화와 창의적 설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운영 가능한 첨단 도시 건설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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