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재를 구하기 위해 리쿠르팅 회사를 통해서 공개모집을 했습니다. 이력서가 1500장이나 들어왔는데, 실제 쓸만한 사람은 2∼3명 정도더군요. 이 중에 1명을 뽑았는데 일이 어렵고 많다고 1주일 만에 나가버렸습니다. 쓸만한 인재는 대기업으로 향하고 있어 벤처기업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 6월14일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IT SoC업계 간담회에서 한 업체 사장의 발언 중. ◇사람이 없어=우리나라 반도체산업 전체에서 마이너로서 설움을 받아 온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가 최근 수년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업계에서는 80년대 말 삼성전자·현대전자·LG반도체 3자 구도에서 ‘빅딜’로 인해 삼성·현대의 2자 구도로 바뀌는 상황을 꼽는다. 자금이 풍부한 메모리 호황기에 수많은 시스템반도체 시제품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던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성공과 실패 경험을 가지고 창업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안정적인 대기업을 뛰쳐 나올 각오를 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 제공은 바로 빅딜이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시스템반도체가 성장기에 접어든 지금, 또 한 단계 성장을 위해 필요한 우수 엔지니어를 구하기는 별따기다. 벤처업계는 창업 초기에는 헌신적으로 일하는 창립멤버끼리 사업을 꾸렸고 이후 친한 선후배를 영입해서 사업을 유지했다. 그러나 기업의 모습을 갖추게 되면서 단순하게 ‘의리’를 이용한 채용에는 한계에 봉착했다. 공채나 외부 추천 등을 통해서 사람을 뽑고 있으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한 CEO는 “공채를 통하면 원하는 수준의 사람을 뽑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홍수 속에 마실 물 없다는 말처럼, 채용을 위한 비용은 많이 쓰지만 실질 효과는 없다”고 주장했다. 헤드헌팅 업체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홈페이지를 통해 연중 모집 공고를 내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업계는 하소연하고 있다. <>반도체 디자이너 5만 양병설=현재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30대 후반과 40대 중반까지 인맥이 CEO 또는 높은 위치에서 이끌고 있다. 대부분 삼성·현대·LG 인맥인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이들 뒤를 받쳐 30대 초반의 젊은 엔지니어들은 거의 수혈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일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이면 더 이상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없다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대기업에 비해 선호도가 낮은 벤처기업이 더 심각하다. 신형철 서울대 교수는 “우선 설계자 숫자를 늘려야 한다”며 “정부, 산업체 등이 나서 ‘5만 디자이너 양성’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력 풀을 늘려야 대기업에 많이 가더라도 중소기업 몫이 생긴다는 것. 경종민 카이스트교수는 “많은 인재가 필요하며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향후 수요가 폭발할 분야를 잘 선정해야 한다”며 “특별한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는 반도체를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시스템반도체 인력과 같은 고급인력은 우리 미래산업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 양성을 위한 산관학 협력 필요=대기업·벤처기업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들로부터 선택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처는 명확한 비전과 도전 정신을 강조해서 흡인력 있는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 이철진 한양대 교수는 “결국 반도체 벤처는 평이한 사람보다 도전정신이 있는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톡옵션 등 성과급 제도를 강화하고 이를 반드시 지켜준다면 창발적인 사람이 도전하게 돼있다”고 주장했다. 마냥 사람이 없다는 넋두리를 접고, 회사가 성공하면 과감하게 보상해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 산관학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우선 이미 자리를 잡은 벤처 또는 대기업들은 학교와 과제 들을 통해 자기가 필요한 인재 양성 공동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대기업들이 학교와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등 설계 인력 양성에 기여한 뒤 업계 모두에게 수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소·벤처업계는 중소기업에서 병역특례를 거친 인재들이 2년 후 대기업으로 옮기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학사특례 제도 도입도 검토해 달라는 입장이다.
◆시스템반도체 인력 양성의 현장 ‘시스템반도체 전문인력기반, 우리가 만들어갑니다.’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산업육성은 기업 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력양성사업의 한 부분으로 정부는 이 분야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시스템반도체 인력 양성사업은 크게 차세대반도체설계인력양성사업과 IT SoC 핵심설계인력양성사업을 들 수 있다.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센터장 경종민)이 운영하는 차세대반도체설계인력양성사업은 지난 95년 삼성전자·현대전자·LG반도체의 지원 아래 추진된 ‘반도체설계인력양성사업’의 후속사업이다. 이미 이 사업을 통해 배출된 인력들은 기업체 및 연구소에서 뿌리를 내기기 시작했으며, 국내 대학의 시스템반도체 설계교육 여건을 한 단계 높이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공개강과·업체출장강의·세미나·기업인력 재교육·원격강좌 등을 통해 설계교육프로그램의 모델을 제시했으며, 전문교재 발간 등을 통해 교육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특히 교육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고가의 반도체설계 툴을 많은 교육생들이 공유할 수 있는 효과가 있어 국가 전체로 볼 때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IT SoC사업단(단장 공진흥)의 IT SoC아카데미는 올해 석·박사급 핵심설계인력 150명과 산업체 설계인력 450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이를 위해 △산·학 협력 프로젝트 지원 △IT SoC 설계교육용 플랫폼 구축 △IT SoC 아카데미 지역캠퍼스 운영 등을 통해 대학과 기업, 지역 간 상호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IT-SoC아카데미는 국내 40여개 SoC 관련 대학과 연계, 석·박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설계실습 교육과정의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SoC 이론을 다지기 위한 IT SoC 전공과목과 실습 위주 설계특론 과목을 이수한 학생에게는 IT SoC 전공인증서가 수여된다. IT SoC 아카데미는 지난 2003년 하반기부터 핵심설계인력양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IDEC 송계호실장은 “시스템반도체 설계는 반도체산업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뿐 아니라 멀티미디어·정보통신·가전·자동차 등 시스템산업 발전을 위해 체계적인 육성이 필요하다”며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해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예산수준이 10-20%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채수익 서울대 교수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접근하면, 앞으로도 반도체 설계 인력 육성에 대해서 헛 바퀴 돌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산업, 학계, 정부 등이 자기 입장을 넘어 의견 통합을 이뤄야 할 때입니다.” 채수익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최근 육성하면서 인재 양성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만 아직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외치는 모습이라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아내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산업계 내에서도 다르고 학교별로도 차이가 큽니다. 한정된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이제는 너무 자신의 이익만 내세우지 말고 방향성을 잡아야합니다.” 최근 몇 년간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의 주도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성과를 내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바로 이런 때부터 산업과 학계가 협력해 균형을 잡고 움직여야할 때라는 것이 채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최근 산자부, 정통부 등의 많은 간담회에서 인력 양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지만 모두 단발성으로 그치고 있다”며 “서로 시각차를 극복하고 이를 실질적인 제도로 만들 수 있도록 상시적인 의사소통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자원을 막아 산업에 요구하는 적합한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부상한 설계 부분에서는 정부도 아직은 전문적이지 못하고 대학의 협력도 제한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처럼 정부가 적은 돈으로 노력하기보다는 산업에서 의견통합을 통해 인재 양성에 많은 투자를 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시각차를 확인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면 이제는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액션’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 채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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