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사업자로 월드컵 경기장을 짓게 하려면 정부는 월드컵을 유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월드컵도 안 열면서 경기장만 여러 개 지으라고 독려하는 격이 됐습니다.” 정부의 투자 유도정책을 꼬집는 한 통신전문가의 말이다. 확실한 수요진작 없이 민간자본의 투자를 유도한다는 얘기다. 이러니 ‘전가의 보도’인 규제와 허가권만 들먹이게 된다는 것. 주요 사업 중 하나인 IMT2000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투자를 결정하는 사업자가 ‘규제 당국의 방침을 따르기 위해 어차피 해야 할 투자라면 시점을 앞당기는 데 따르는 이자비용쯤은 감당할 수 있지 않느냐’는 내부 논리를 세울 정도다. ◇HSDPA 투자, 정부는 뭐 했나=정보통신부는 “우리나라의 경우 CDMA(EVDO서비스)와의 서비스 차별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업자가 투자에 소극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ETRI 등을 통한 간접적인 기술 지원과 민관 협의회를 구성, 허가조건 이행 감독이라는 카드를 뽑아들었다. 듀얼밴드·듀얼모드(DBDM)와 핸드오프 기술 지원도 완료했다. 정기적으로 투자이행 사항을 관리감독했다. 하지만 사업자가 투자를 하고 싶도록 만드는 투자유도 정책은 없었다는 지적이다. 기술애로 지원이나 사업계획서상의 투자 감독에 그친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를 미뤄오던 SK텔레콤이 올해 하반기 투자 본격화를 선언했지만 이는 정부정책의 성과라기보다는 세계적인 추세와 장비업그레이드 시점이 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그토록 애먹이던 WCDMA(HSDPA) 투자에 그나마 한 개 사업자라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만든 주요 원인은 정부정책이 아니라 시장의 변화라는 얘기다. ◇HSDPA 독주할까=SK텔레콤의 HSDPA 투자가 경쟁적 투자를 유도할지는 의문이다. KTF는 HSDPA 투자에 조심스러운 입장이고 LG텔레콤은 EVDV를 포기하고 대안으로 제시한 EVDO 리버전(r)A 투자도 미루고 있다. 이유는 사업자의 자금사정도 있지만 네트워크 경쟁력이 대세를 단숨에 뒤집지 못하는 시장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통신망이 밸류체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EVDO에서 HSDPA로 업그레이드했을 때 추가되는 서비스가 ‘영상전화’에 그치는 것도 한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나머지 사업자의 투자를 이끌기 위해서는 정통부가 화상전화를 이용한 교육서비스라든지, HSDPA 양방향 통신망을 이용한 공익서비스라든지 하는 수요를 창출해 EVDO와 HSDPA간 차별점을 만들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SDPA가 와이브로와의 경쟁국면에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대체재 논쟁이 불거지며 와이브로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 상대적 투자효율성을 내세워 HSDPA가 독주할 경우 선순환적인 경쟁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다. 이에 따라 결국 4G에서 합쳐질 두 서비스가 제대로 경쟁을 벌이며 투자할 수 있도록 와이브로의 무선 VoIP 도입을 허용하는 등의 시장재편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구닥다리 정부정책=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아직도 ‘사업권을 받아 투자하면 두고두고 돈 번다’는 과거 패러다임에 맞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 패러다임 변화는 ‘하나로의 와이브로 포기’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통신서비스 허가·규제, 주파수정책, 산업기술정책에 그치는 현재 정통부의 조직과 권한으로는 적절한 정책 시행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통부와 사업자 사이에선 답이 안 나오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이영주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통사업의 밸류체인이 네트워크와 고객이라는 기존 플랫폼에서 콘텐츠와 커뮤니티, 단말기로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SK텔레콤만 해도 IHQ·TU미디어·SK커뮤니케이션즈 등의 콘텐츠와 커뮤니티, SK텔레텍의 단말기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것. 이 애널리스트는 “결국 정통부만의 정책으로는 답이 안나온다. 문화관광부나 방송위, 산업자원부가 함께 움직여야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자가 컨버전스로 방향을 전환하면 정부도 컨버전스를 받아들여야 정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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