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기획과 설계는 해당 업체에서 직접 하되 생산은 외주를 주는 ‘개발자 주도형 생산(ODM)’ 방식이 그래픽 카드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대만의 저가 제품과 싸워야 하는 국내 업체는 ODM 방식을 통해 자체 브랜드 유지와 함께 가격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는 이전에 가격이 싼 제품을 수입해 단순 유통하는 데서 벗어나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고 대신에 경쟁력 있는 생산기지를 적극 활용하는 ODM 방식을 도입하는 추세다. ◇자체 브랜드 ‘뚜렷’=올해 그래픽카드 시장의 두드러진 추세는 자체 브랜드 제품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자체 생산을 고집하는 시그마컴 외에도 슈마일렉트론·인사이드 등은 과거와 달리 설계·연구 과정은 자체 진행하고 생산은 국내외 공장을 이용하는, 이른바 ODM 방식을 통해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는 수입산의 가격 공세에 대응해 채산성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특히 일부 업체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수출까지 추진하고 있다. 에버탑은 이달 초 지포스6600 칩세트를 장착한 그래픽카드 ‘한반도6600’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전량 국내에서 생산됐는데 에버탑은 품질을 앞세워 수출도 추진중이다. 인사이드텔넷컴도 자체 공장을 매각하는 대신 연구개발을 전담하고 생산만 아웃소싱하는 방향으로 경영 전략을 새롭게 수립했다. 지난 2월 자체 브랜드로 그래픽카드 한 개 모델을 출시한 에프아이온도 물량 확보를 위해 생산 공장을 물색하고 있다. 이 밖에 서너 군데 유통업체가 그래픽카드의 핵심 부품인 칩세트 등은 아웃소싱하는 대신에 자체 브랜드로 생산하기 위해 엔비디아 칩세트 독점 공급업체인 피치텔레콤과 접촉중이다. ◇왜 ODM인가=수입 그래픽카드가 국내 시장의 90%를 장악하면서 소매 시장에서는 ‘가격’이 제품을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이 됐다. 제품과 브랜드는 같은데 유통 채널이 달라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만 고려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제품은 4개 회사가 같은 대만 제조사의 그래픽카드를 출시하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국산 ‘프리미엄’을 살리고 제품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ODM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국내 제조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국산’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업체는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포스6600GT 모델 등 이른바 ‘잘나가는’ 제품은 국내에서 생산·판매하고 나머지는 중국에서 수입해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마케팅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김세환 에프아이온 사장은 “슈마 등 제조를 중단한 회사의 연구원을 영입해 제품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자체 생산은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수익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강조했다. ◇전망=이미 값싼 중국산 제품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고비용을 감수하면서 제조를 고집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가격요건을 맞추기 위해 대만과 중국 제품만 무분별하게 수입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ODM을 통한 아웃소싱 생산과 ‘브랜드’를 유지하는 고급화 전략이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게다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을 고려할 때 중국과 대만을 생산기지로 해 국내 업체의 브랜드를 살린다면 시장 경쟁력도 충분하다는 이점도 있다. ATI코리아의 강성근 상무는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아무리 품질이 좋다해도 국내 생산만으로는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며 “대신에 연구개발을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적절하게 외부의 생산기지를 활용하는 ODM 방식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정훈기자@전자신문, ex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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