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보기술(IT)업계의 화두는 단연 인수합병(M&A)이다. 전세계 IT업계는 이미 M&A 열풍에 휩싸였다. 지난 연말에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시만텍이 베리타스의 인수를 확정지었다. 인수기업은 피인수기업의 고객기반과 제품군을 확보하고, 피인수기업은 기업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M&A가 불황기 IT 생존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도 M&A로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 차원의 M&A가 불가피한 데다 정부도 벤처기업 간 M&A 요건을 완화하는 등 M&A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세계적으로도 거대 기업간 대규모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업종에 불어닥친 컨버전스(융합) 바람도 M&A 촉진제로 작용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M&A 활성화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황이다. ◇통신, M&A가 판도 바꾼다=유무선 통신시장의 구조조정이 촉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M&A는 올해 통신서비스 시장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업계 전문가들은 “통신·방송 융합이 본격화하는 올 연말쯤 KT와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큰 틀의 구조조정 내지 M&A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새해 벽두부터 KT와 KTF의 합병이나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M&A 등과 같은, 시장의 판도를 바꿀 M&A설이 나돌고 있다. 모두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지만 M&A에 따른 판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두루넷 인수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하나로텔레콤이 2월까지 인수 여부를 결정한다. 파워콤과 KIDC를 보유한 LG그룹도 데이콤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발사업자인 드림라인과 온세통신도 매물로 나와 있다. 휴대폰업체들도 M&A 태풍의 한가운데 있다. 지난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세원텔레콤 등 3∼4개 업체가 국내외 업체와 매각 협상을 진행중이다. 장비업체들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덩치를 키워야 하는 형국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난립했던 이동통신사업자들이 M&A를 통해 3개 업체로 통합됐던 것처럼 올해도 대형 M&A가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한다. ◇컴퓨팅, M&A 스타트=컴퓨팅업계는 지난 연말 오라클의 피플소프트 인수를 계기로 국내 업체들 간 M&A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코스닥 등록업체인 씨오텍이 윈디플랜이라는 회사에 적대적 M&A 가능성이 제기되는가 하면 고객관계관리(CRM)업체인 유니보스는 현재 인수업체를 찾고 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소프트웨어업체들에 대한 M&A가 수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경기 불황과 정부의 중소기업 IT화 사업 자금 축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사자원관리(ERP)업체나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보안업체들도 M&A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PC업체들은 후발업체를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전략적 제휴 또는 M&A 파트너를 물색중이다. 세계적인 컴퓨팅업체들이 제품군 강화와 고객기반 확충을 위한 M&A를 추진한다면, 국내업체들은 비IT업체들의 우회등록을 위한 ‘짝짓기’가 많아 시너지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권영범 영림원소프트랩 사장은 “전세계적으로 생존을 위해 컴퓨팅업체 간 M&A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는 상황이 다르다”며 “국내에서도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도록 합병기업들은 노력해야 하며, 업계 전반적으로 M&A에 대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게임, 전방위 M&A=인터넷업계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가장 빨리 트래픽을 올리는 방법으로 M&A를 가장 선호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시장은 다소 정체기를 보이고 있지만 무선·TV포털 등 성장성이 높은 분야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올해에도 지난해처럼 업계 M&A 시도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는 경기 상황이 지난해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인수가격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업체 간 먹고 먹히는 게임이 벌어질 공산이 커졌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국내 업체들의 해외 업체 인수다. 지난해 NHN의 중국 해홍사 인수,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미국 라이코스 인수처럼 글로벌화를 모색하는 인터넷기업들이 해외 업체 사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업체들 간 M&A 이슈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야말로 전방위 M&A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박재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SK커뮤니케이션즈가 싸이월드를 인수한 이유는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에 앞서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라며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합리적인 가격에서 인터넷업체 간 M&A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업체들은 세계적인 업체들의 공세에 맞서 국내 업체 간 ‘몸집 불리기’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업체들의 M&A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엔씨소프트 등 대형 업체들이 경쟁력있는 중소업체를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정부가 지난달 24일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벤처기업 간 M&A를 적극 지원할 뜻을 분명히 밝혀 업종을 불문하고 대형 업체와 중소업체 간 M&A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외국자본 알짜벤처 노린다 국내 IT업계는 최근 유티스타컴이라는 중국계 미국 통신장비업체 때문에 발칵 뒤집어졌다. 유티스타컴은 국내 유망 휴대폰 연구개발(R&D)업체인 기가텔레콤의 연구부문을 매입한 데 이어 현대시스콤의 핵심사업인 CDMA 기술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기술 유출 논란과 함께 국내 기업경쟁력 약화라는 비판이 일었다. 국내 유망 벤처기업들이 외국계 기업 또는 자본의 먹잇감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내 IT 경기와 코스닥시장의 장기침체로 발생한 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이 문제가 됐다. 최근 중국 온라인게임 유통업체인 샨다는 국내 유망 게임업체인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했다. 막강한 자본을 앞세운 중국 업체가 국내 유망 게임업체를 인수한 것이다. 이 같은 징후는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IT경기 위축에 직면한 업체들이 외국계 기업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당장 지난해 중국 휴대폰 시장의 침체로 수출에 영향을 받은 국내 중견·중소 휴대폰업체들이 중국 업체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국내 휴대폰업체는 중국 수출을 통해 이미 제품력을 검증받은 데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휴대폰의 종주국이라는 점에서 해외 시장으로 발을 넓히려는 중국 업체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 텔슨전자 등 지난해 경영난으로 화의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2∼3개 중견 휴대폰업체가 중국 또는 중국계 업체들로부터 M&A 인수를 제의받은 바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한 온라인게임업체들도 외국계 업체들의 M&A 사냥감으로 떠올랐다. 샨다의 액토즈소프트 인수 이후 국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중소 게임업체들은 중국은 물론 미국 게임업체들의 M&A 대상이 되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외국업체들의 M&A 공세에 맞서 국내 업체들끼리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국내 유망 벤처기업 30여개가 외국기업에 인수됐고, 여기에는 자금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알짜 벤처들도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마케팅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회사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외국계기업의 인수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외국계 업체들의 M&A 시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세계 M&A 1조9500억달러 기업간 M&A가 활발해지면서 M&A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금융시장 조사기관인 톰슨파이낸셜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서 이루어진 기업 M&A 규모는 총 1조9500억달러로 2003년의 1조3800억달러에 비해 41%나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2004년은 지난 2000년 이래 M&A가 가장 활발한 한 해로 기록됐다. 이 중 약 15%에 달하는 2983억달러 규모가 12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지난 3년 동안의 한 달 단위로는 최대 규모다. 스프린트는 넥스텔커뮤니케이션을 350억달러에 인수한 것을 비롯, 존슨앤드존슨은 가이디언트를 250억달러에 합병하기로 했다. 시만텍은 베리타스를 135억달러에 사들였고, 오라클은 피플소프트를 103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또 중국 컴퓨터업체인 레노보는 IBM PC부문을 175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금리가 낮고 기업의 영업 실적이 호전되면서 M&A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모건스탠리 M&A사업부의 사이먼 로비 회장은 “역대 금리 수준과 비교하면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으며 M&A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유럽과 미국 기업들의 경영진은 전략적 M&A에 대해 예전보다 더욱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아시아지역의 M&A는 중국을 중심으로 증가세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더욱 활발한 M&A가 전망된다. 톰슨파이낸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M&A 건수는 6365건, 규모는 1039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년대비 건수와 규모가 각각 17%, 3% 증가한 것이다. 중국이 2141건(245억4000만달러)으로 가장 많았고 홍콩 724건(135억9000만달러)과 한국 228건(126억2000만달러)이 뒤를 이었다. 마이크 버치톨드 모건스탠리의 아시아태평양 대표는 “중국은 아시아 M&A의 중심이 될 것”이라며 “지난해의 M&A 증가 분위기가 올해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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