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공계 비정규직 문제는 날로 심각성을 더하며 이공계 기피의 큰 원인으로 떠올랐다. 이공계 비정규직이란 정부출연연구소 등의 경우 계약직 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Post Doc), 학연과정 연구생, 인턴·위촉·임시연구원 등이 포함된다. 대학의 경우에는 비정년 전임교원, 기금·계약·연구 교수, 시간강사 등이다. 최근 3년간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은 80%가 넘는 연구인력을 모두 비정규직 인력을 충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이 연구개발의 핵심주체로 떠올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비정규직이 연구개발 핵심 주체=대덕연구단지의 A연구소. 이 연구소는 올해 4월 기준으로 600여 명의 연구개발 인력 중 274명을 정규직으로 나머지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B연구소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정규직이 162명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224명에 달한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과 국회싸이앤지포럼이 17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개 연구소는 연구인력의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를 제외한 다른 연구소들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아 30%가 넘는 연구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나도선 울산의대 교수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신분의 연구원이 늘어나면서 국가 연구개발 경쟁력 저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차세대 연구인력의 진입장벽이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우 한국과학기술노동조합위원장은 “비정규직이 연구개발 핵심주체로 떠올랐다”며 “이들은 낮은 처우와 불안정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국가 R&D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직된 연구기관 인원수=공공성격이 강한 출연연구기관과 대학들은 왜 이공계 기피의 원인으로 떠오른 비정규직 연구원의 고용 폭을 확대하며 기형적인 인력 수급 구조를 가져가는 것일까. 비정규직이 양산된 원인은 경직된 연구기관의 인원수 때문이다. 사실상 어디에도 연구기관의 연구원 수 제한에 대한 규정은 없다. 그러나 인건비 예산에 대한 조정권을 경제부처가 갖고 있기 때문에 매년 연구예산 확보가 급급한 연구기관들은 정규직 연구원 수를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 등 국가 연구개발(R&D) 과제와 예산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연구기관들의 인건비 예산은 계속 제자리 걸음이다. 연구개발 예산 증가 폭과 함께 늘어나야 할 정규직 인건비는 그대로다 보니 늘어나는 연구과제를 수행할 연구원은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으로 충당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연구과제중심제도(PBS) 도입 역시 비정규직 양산을 부추기는 중요 원인이다. 연구원 인건비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없는 외부과제에서 연구비를 충당하는 개념의 PBS는 1∼2년짜리 계약직 연구원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 최창수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이 많이 증가한 원인 중 하나는 국민의 정부 이후 도입된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예산 통제 때문”이라며 “각 기관이 가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데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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