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U를 준비하는 사람들] 오전 8시 50분. 출근 전인데도 전화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전화 좀 받읍시다.” 일찌감치 나온 윤종석 팀장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린다. 그도 이미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들고 있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2동 1291번지에 위치한 벡스코(BEXCO) 2층에 자리한 ‘ITU텔레콤아시아2004 대회’ 조직위원회 일과의 시작은 전화벨에서 부터다. 윤 팀장은 왼손으로는 전화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연신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다. 간밤에 PC에 고인 e메일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참가업체가 많이 포진한 중국이나 미국은 물론 ITU 본부가 있는 스위스에서는 과장을 조금 보태 매 초마다 메일이 답지한다. 우리와 1시간의 시차를 갖는 중국에서는 한 두통씩 오고 있고 미국과 스위스로부터는 어제 밤사이에 온 메일들이 적지 않다. “각국 고위 인사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안을 찾아 봅시다.”, “기업들 스폰서 십에 문제는 없나?”, “티켓 발송 문제 좀 신경 써줘요.” 어깨 위로 넘겨다본 윤 팀장 PC 폴더에는 ITU관련한 파일들이 빽빽하다. 윤 팀장은 업무 지시로 쉴 새가 없다. “매일 12시 퇴근”이라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아닌게 아니라 턱수염이 고개를 내민 형상이 꼭 고3 수험생을 연상시켰다. 그의 인사는 정말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이 맞을 듯 했다. 커피 한잔 마실 틈도 없이 12시를 맞이했다. 여느 직장인들이 갖는 1시간의 점심은 사치다. 지하 식당에서 설렁탕을 시켜 30분만에 뚝딱 먹고 돌아와보면 어느새 또 메일이 수북히 고여 있다. 오후라고 해서 ‘살인적인(?)’ 노동강도가 개선되는 기미는 없다. 복도에서 만난 직원 하나는 “커피요? 담배 한대 편하게 피울 여유도 없습니다”라며 총총 사무실로 사라진다. 좋게 봐줄래서가 아니라 불평하는 기색은 아니다. 시청에서 파견나온 박수원 주사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힌다. 24명이 해낼 수 있는 업무량은 초과하는 게 분명하지만 부산 역사상 기억에 남을 행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후 시간은 회의로 바쁘다. 각 팀별로 회의는 수시로 이뤄지지만 오늘은 팀장 회의다. 팀장 3명은 마침 비어 있는 테이블을 찾아 모여 든다. 응대 테이블에는 이미 3, 4개의 종이컵이 나뒹굴고 있다. ITU 조직위에는 행사와 직간접으로 연관있는 사람들만 하루에도 수 십명이 드나드는데 이들을 위한 별도 인력을 둘 수 없어 자판기를 설치했다. 내방객들이 쓴 종이컵을 치울 시간조차 없다. 팀장들의 회의 중에도 몇 간 떨어져 있는 배수태 사무처장의 방에서는 내방객을 위한 커피 주문이 잇따르고 있었다. 그럭저럭 오후 7시가 넘어섰지만 퇴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윤 팀장이 일어난다. 대외 약속 때문이지만 직원들에게 미안한지 뭐라 말은 못하고 슬그머니 양복 웃저고리를 집어든다. 직원들에 대한 배려같기도 했다. 물색없는 직원 하나가 “불가피한 자리가 아니면 곧 돌아오십니다”라고 귀띔한다. 올해 50세를 맞이한 ITU조직위 기획팀장의 출근시간은 어쩌면 ‘오후 9시’인지도 모르겠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풀죽은 부산경제 재도약 `희망봉` 오는 9월 7일부터 5일간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에서 열리는 ‘ITU텔레콤 아시아 2004(부산ITU) 대회’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칼리 피오리나 HP 회장 등 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이 몰려 든다. 포럼의 연사로는 어윈 제이콥스 퀄컴 사장, 안도 구니다케 소니 사장 등도 예정돼 있다. IBM·지멘스·인텔·루슨트도 이미 참여 의사를 밝혔다. ‘부산ITU’가 세계의 시선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고는 해도 IT부문은 각국 성장의 엔진으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과 30일 후면 세계 IT업계를 넘어 경제계를 뒤흔드는 파급력을 가진 인사들이 속속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인 것이다. ‘부산ITU’는 향후 3∼5년간 세계 경제를 내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부산 시민들에게 이 행사는 부산의 중·장기 미래를 가늠짓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부산경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경기지표가 암울하다. 제조업 생산은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12개월 연속 하락했다. 수출이 늘고 실업률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과거 하락폭이 너무 컸던데 따른 반사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대표기업도 없다. 2003년 매출액 기준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부산기업으로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최고 순위이지만 107위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벤처 기업들의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하다. 정부가 중소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집중 육성하고 있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노비즈) 2482개 중 울산을 포함한 부산지역은 88개로 전체의 3.5%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의 모습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산ITU’는 당연히 IT업계를 넘어 부산 산업계의 ‘희망봉’으로 부산 시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으고 있다. IT는 물론 여행·숙박 등의 부문에서 경제파급효과가 이론적으로 2000억원에 달한다. IT업계에서는 특히 부산의 산업적 관심이 IT로 쏠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역 업체들의 해외진출 기회도 넓어질 것이며 이는 업계 스스로도 ‘글로벌 마켓’에 대한 이해도가 증진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바다. “부산IT업계에 있어 부산ITU는 ‘단순한 5일간의 행사’가 아니다”라는 부산정보산업진흥원 벤처육성팀 김준수 팀장의 말은 부산 IT업계가 이 행사에 거는 기대가 얼마 만큼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터뷰]배수태 부산ITU조직위 사무처장 “의전에서부터 문화행사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대회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ITU텔레콤 아시아 2004 대회(부산ITU)’ 조직위원회 배수태 사무처장(49)은 행사를 앞두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는 9월 7일로 예정된 개막식은 물론 각종 리셉션, 환송식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는 그는 부산ITU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성공한 행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당수의 국가 원수들이 참여를 약속했고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부산으로 몰려들 것이어서 이번 행사가 부산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부산ITU는 아시안게임을 치러낸 도시 부산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행사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세계 정상의 전문 전시회인데다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행사여서 세계 IT업계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행사는 침체에 빠진 부산 IT부문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배 처장은 이 같은 우려들을 일축했다. ‘IT강국 대한민국’과 ‘IT 부산’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의 뇌리에 심을 수 있는 이벤트들이 행사에 앞서, 혹은 행사기간 중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배 처장은 “남은 동안 우리나라 내에서 대회에 대한 관심도 제고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보유한 기술과 첨단 제품들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아놓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기회를 박차는 꼴이 될 것이라는 부연이 뒤따랐다. 배 처장은 “‘땀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신조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30일 뒤,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IT종사자들의 눈이 부산으로 몰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부산=허의원기자@전자신문, ew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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