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비취색과 거기에 새겨진 상감무늬에서 보듯 우리 민족은 체질적으로 조합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철진 한양대 나노공학과 교수(46)는 탄소나노튜브(CNT)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근원적 힘을 우리 민족의 타고난 조합능력과 솜씨로 설명하면서 대표적 사례로 고려청자를 꼽았다. 탄소나노튜브는 1991년 일본 NEC의 이지마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구조가 알려진 후 각국에서 탄소나노튜브에 관한 합성과 물성, 응용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기계적 강도와 탄성도가 뛰어나고 화학적으로 안정된 소재다. 또 환경 친화성이 있으며 전기적으로 도체 및 반도체성을 가져 정보전자소재, 고효율 에너지 소재, 고기능성 복합소재, 친환경 소재 등 21세기를 이끌 첨단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이철진 교수는 고순도 탄소나노튜브 합성과 구조 제어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가 탄소나노튜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7년이었다. 서울대 임지순 교수가 국내에 처음으로 탄소나노튜브를 소개하면서 이 교수는 이 분야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됐다. 삼성반도체에서 64K D램 개발에 열중했던 그는 그룹에서 기술대상을 수상하는 반도체 분야 연구원이었다. 그저 탄소나노튜브의 다양한 성질과 물성에 과학적 호기심이 발동했던 그는 삼성에서 군산대교수로 자리를 옮겨 재직하면서 임지순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탄소나노튜브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이때부터 이 교수는 연구용으로 구하기 어려운 탄소나노튜브 샘플을 구해 연구에 몰두했다. 소량의 탄소나노튜브로 연구를 거듭하던 그는 충분한 양의 탄소나노튜브로 연구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원하는 모양으로 고순도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유명 과학저널인 네이처에 실린 관련 논문 뒤지기를 수차례. 그는 아무도 공개하지 않은 탄소나노튜브 생산 장비를 그저 공개된 논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연구에 들어갔다. “기존 개념으로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면 너무 많은 불순물이 생기고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이때 생각한 것이 기존 방법을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이 교수는 기존 개념과 달리 기판에 나노사이즈의 촉매를 분포시키고 이 위에 탄소나노튜브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시도했다. 다른 과학자들은 나노 사이즈의 구멍을 만들어 그 안에 탄소나노튜브를 생성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해외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순수 국내 기술로 고순도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탄소나노튜브가 발견된 지 8년 만에 한국에서 대량 합성의 기반을 잡게 된 계기가 된 연구성과였습니다. 이 모든 기술은 모두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그는 연구 당시 순간 순간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깨알같이 써놓은 연구일지를 펴보이며 그날의 감동을 되새겼다. “우리는 그 어느 나라 과학자도 하지 못한 탄소나노튜브의 대량합성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그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탄소나노튜브의 정제·분산·기능화 연구에 초점을 맞춰야할 시기입니다.” 이 교수는 향후 이 분야에 진출하는 학생은 물론 다른 과학자들이 탄소나노튜브를 실제로 응용할 수 있는 연구에 치중해 주기를 주문했다. 대량생산이라는 1단계 성과를 달성한 우리 나노 연구계가 가야할 방향은 용도별로 구조와 특성을 제어하는 2단계 연구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또 향후에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연료전지와,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Field Emission Display), 기능성 복합재료 등 상품화의 3단계로 산업계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적인 성과 속에서 한국인의 기질을 찾는 등 우리가 탄소나노튜브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이유까지 분석하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그의 사무실에 있는 집기 중 70% 이상은 탄소나노튜브 분야를 우리가 왜 잘할 수밖에 없나를 설명하는 물품들로 가득하다.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할 때 도자기를 굽는 마음으로 한다는 이 교수. 그는 그래서 도자기 공부까지 하며 도공의 마음으로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고 있다. “일본인은 100가지 실험을 통해 원리를 파악하기 때문에 연구에 오랜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뛰어난 눈썰미로 성공할 가능성이 큰 실험 10여 개만 진행하고 거기서 결과를 얻어냅니다.” 그는 한국인이 체질적으로 조합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높은 통찰력과 솜씨를 지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3년 이내 탄소나노튜브 대량 합성 장치가 구축되고 고순도 나노튜브를 생산하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일본 역시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해낼 것을 확신합니다.” 이미 전세계 50여 개가 넘는 연구실에 탄소나노튜브를 공급하며 한국 나노기술을 전파하고 있는 이 교수. 그는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을 앞질렀던 것에 이어 탄소나노튜브 분야가 그 바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나노기술 강국 한국의 미래를 밝게 예측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
[국내 CNT 기술 어디까지 왔나] 국내의 탄소나노튜브(CNT) 합성기술은 이미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하였으나 구조제어기술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진 상태이다. 국내에서 구조제어 기술은 주로 한양대, 성균관대, 서울대, 포항공대, 경북대 등에서 연구되고 있다. 국내의 CNT 구조제어기술 수준은 아직도 직경과 형태제어에 제한된 실정이고 불순물 도핑기술, 이성질체(chirality) 조절기술, 표면의 결함, 형상 조절기술 등은 아직은 요원한 상태이다. 연구팀별로 살펴보면 성균관대와 포항공대에서는 불소를 이용한 CNT의 분산과 기능화에 관한 연구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나노튜브의 기능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세종대에서는 초음파기와 질산처리를 통한 CNT의 절단 및 복합재 응용에 관한 연구를, 한양대에서는 열처리와 산처리를 통한 CNT의 정제와 분리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수행중이다. 산업계에서는 일진나노텍과 LG 화학에서 산처리와 계면활성제를 이용한 정제 및 분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여러 국립연구소와 민간기업연구소 등에서도 CNT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돼 정제, 분산, 절단, 기능화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선진국과 비교해 국내 기술수준과 기술개발투자 여건은 극히 열악한 실정이다. 탄소나노튜브의 구조제어·정제·분산·기능화 기술은 기초연구 및 산업화 응용을 위한 기반기술로 선진 각국에서도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CNT 구조제어기술은 선진국대비 40% 정도의 기술 수준이다. 정제·분산·기능화 기술은 선진국 대비 30% 이하의 기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도 대부분 기술이 초보적인 상태이고 특히 CNT의 정제·분산·기능화 기술은 현재 시작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이미 국제경쟁력을 확보한 국내의 CNT 합성기술을 토대로 구조제어·정제·분산·기능화 기술에 대한 연구를 전략적으로 추진하면 현재 선진국에 비해 1∼2년 뒤떨어진 관련기술을 3년 후에는 동등한 수준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 5년 후에는 선진국에 비해 일부 분야에서 비교우위의 경쟁력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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