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80년대를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본 제조업의 시대로 기억한다. 일본은 그러나 90년대 ‘윈텔(윈도+인텔)’로 대변되는 미국 IT 파워에 맥을 못 추고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성급한 이들은 ‘일본은 없다’고 말했다. 80년대 일본 가전시대를 이끈 마쓰시타의 나카무라 구니오 CEO가 취임한 것은 2000년이다. 취임 직후 그는 ‘파괴와 창조’를 내걸었다. 나카무라 CEO는 80년대 최고였던 일본 제조업의 업그레이드에 나섰다. 인원 1만3000명 감축과 30여개 공장의 폐쇄가 뒤따랐다. 해외 공장뿐 아니라 일본 공장에도 칼을 들이댔다. 삭감하고 통합하고 변혁시킨 그에게 ‘파괴왕’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4년째인 올들어 전통의 마쓰시타가 저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차세대 성장 시장인 DVD리코더, PDP TV 등의 분야에서 세계를 앞서가며 올 1분기(4∼6월) 영업이익이 27.4%나 늘어났다. 마쓰시타는 불황 10년 동안 바짝 엎드려 힘을 키운 일본 IT와 제조업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최근 쏟아져나오는 수치들은 강해진 일본의 실체를 웅변한다. 우선 ‘손익분기점 매출’의 추이다. 손익분기점 매출은 이익을 내기 위해 넘어야 하는 최소한의 매출을 나타낸다. 도달하지 못하면 적자다. 일본 제조업의 손익분기점은 93년 3월기(92년 4월∼93년 3월) 151조엔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올 3월로 끝난 회계연도에는 131조엔까지 떨어졌다. 매출이 줄어도 버틸 수 있는 기본 체력이 강화됐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밑바닥을 다지기위해 자신들의 상징인 ‘종신고용제’마저 뜯어 고쳤다.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인원 삭감을 감행했다. 일본 제조업체들은 결국 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인건비와 감가상각비 등 고정비용을 10%정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다 일본 정부의 ‘제로 금리’ 정책을 타고 차입금을 지속적으로 상환했다. 일본 제조업체들이 연간 부담해야하는 이자 등 금융 부담은 지난 10년새 70%나 줄었다. 원자재 조달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캐논의 경우 매출 대비 원가비율이 지난 6월에 49.5%를 기록하며 50% 의 벽을 깼다. ‘종업원 일인당 매출’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아킬레스건인 인건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의 가능성을 읽게해 주기 때문이다. 90년대 6000만엔(6억원) 밑으로 떨어졌던 일인당 매출은 최근 7000만엔을 돌파하며 최고였던 80년대말 수준을 넘어섰다. 뿐만 아니라 종업원 한명이 낳는 부가가치를 뜻하는 노동생산성도 10년 동안 20%나 높아졌다. 대표적 부품업체인 무라타제작소의 경우 직원 한 명이 낳는 연간 부가가치는 무려 5772만엔에 달한다. 일년에 순이익 6억원을 내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무라타제작소의 직원 한 명만도 못한 셈이다. 일본 제조업의 저력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방증이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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