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서 열린 오티스LG의 본사 창립 150주년 기념식. 이날 이 회사 장병우 사장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지난 99년 LG산전에서 미국 오티스로 매각될 때만 해도 어떻게 꾸려나갈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4년 만에 이렇게 성대한 잔치까지 하며 단일 품목으로 매출 1조원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됐네요.” IMF를 전후해 국내 토종기업의 산전사업부문을 사들였던 외국계 업체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는 국내영업은 물론 해외수출 실적면에서도 뚜렷한 호조를 기록하면서 ‘불패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반면 이들은 헐값매각이나 국부유출이라는 곱지않은 시선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글로벌 체제로 무장=지난 99년 LG산전의 엘리베이터 사업부문이 미국의 오티스사에 매각되면서 설립된 오티스LG는 이후 되살아난 국내 건설경기 등에 힘입어 매년 10% 안팎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150년 전통의 엘리베이터 명가인 오티스의 기술력을 배가, ‘기계실없는 엘리베이터’ ‘끼임방지 에스컬레이터’ 등을 모두 국내 최초로 선보이면서 우리나라 엘리베이터 시장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고 있다. 이 회사 홍재영 이사는 “거대 그룹사에 속해 있을 때는 그룹공통비 등 각종 간접비용 지출이 많았고, 매출외형을 위한 무리한 영업도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각 이후에는 경영과 영업이 철저한 수익성 위주로 글로벌화되면서 보다 알찬 운영이 가능했졌다는게 홍 이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자동제어부문을 인수, 로크웰삼성오토메이션을 설립한 미국 로크웰사도 이 회사 설립 1년 만에 국내 공장자동화(FA) 시장의 절대 강자로 만들었다. 특히 로크웰삼성은 설립 첫해 매출이 국내시장에서만 800억원을 기록, 불과 1년 만에 삼성전자 시절보다 30%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이 회사 이재영 마케팅 담당 이사는 “판로 다각화로 올해 대삼성 매출비중을 삼성전자 시절에 비해 20%포인트 가량 낮추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또 “다음달께는 미국 로크웰이 자랑하는 디바이스 기술을 기존 기기에 접목한 차세대 PLC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캐리어사가 LG산전 자동판매기·냉동쇼케이스 사업부문을 인수해 설립한 캐리어LG를 비롯해 스웨덴 볼보사가 삼성중공업의 중장비 부문을 인수해 설립한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최근 동양에레베이터를 인수한 독일 티센크루프사 등이 산전부문의 대표적 해외매각 성공모델로 꼽힌다. ◇국제화냐 국부유출이냐=국내에서는 그러나 이들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이 적지않다. 특히 IMF를 전후해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논리로 해외에 헐값에 매각된 사례가 많고, 외자유치를 빙자해 축적된 기술과 마케팅 노하우가 외국사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장병우 오티스LG 사장은 “매출의 30% 이상을 중국·동남아 등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우리로서는 섭섭한 지적”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보면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내며 고용을 창출하는 게 바로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로크웰삼성측도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삼성전자 텍사스 오스틴 공장 등에 들어가는 자동화라인 수주는 모두 로크웰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 매각업체는 국내 모기업들이 일정부분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브랜드 사용권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LG전자는 오티스LG의 지분 19.9%를 갖고 있으며, 오는 2005년부터 ‘LG’ 브랜드에 대한 사용료도 매출의 1% 안팎에서 정산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역시 로크웰삼성의 이사회에 정식 멤버로 참석하고, ‘삼성’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 수익도 매년 얻고 있다. 심상렬 광운대 교수는 “글로벌경제 체제하에서 국경을 긋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특히 선진기술의 도입효과가 큰 산전부문의 경우 토종업체와 초일류 글로벌기업간 보다 다양한 결합모델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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