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만해도 500만달러 수출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괜찮았는데 올해는 200만달러 채우기도 힘들 것 같네요. 내수라도 좋으면 괜찮으련만...” 국내 그래픽카드 제조업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해외는 물론 그나마 수성해온 국내시장에서도 힘을 잃어가며 사업철수 문제가 심각히 거론되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특히 PC경기 하강에 따른 결과라고 하지만 회복된다 해도 크게 자신이 없다. 생존문제, 국내 그래픽카드 제조업계를 구석에 몰고 있다. ◇공장 못 돌린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래픽카드 유통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던 자네트시스템은 계속되는 사업부진에 최근 공장가동을 중단했다. 제살깎기식 가격경쟁을 지양하며 사업을 회복시키겠다는 계획으로 올 초 의욕적인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했지만 사실상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이 회사 임영순 전무이사는 “워낙 경기가 나빠 힘들었다”며 “아직 제조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닌데 고민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1년 말 그래픽카드 제조업에 뛰어들며 1년 만에 157억원의 매출을 기록, 중위권 업체로 급부상했던 유니텍전자는 최근 공장매각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 정신영 상무는 “아직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인천공장 매각 계획이 있으며 그래픽카드 제조를 중단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정 상무는 “시장이 안좋다보니 제조하기가 갈 수록 힘들다”며 “회사 내부에는 유통으로 돌아서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제조’ 매력이 사라진다=이들 회사 외에도 슈마일렉트론, 시그마컴도 일부 모델은 제조를 포기했다. 대만, 중국 등으로부터 수입된 제품에 도저히 가격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슈마일렉트론측은 “대만산 그래픽카드는 국내에 수입돼도 시중에서 1만∼2만원 저렴하게 판매된다”고 말했다. 시그마컴도 “그래픽카드의 핵심부품인 칩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유통단계를 거치다 보니 특히 보급형 제품의 경우 팔려도 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자네트시스템 임영순 전무이사는 “구조 자체가 대만, 중국에 비해 원천적인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대만은 정부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으로 세계 최대의 그래픽카드 제조업체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대량생산을 통한 저가제품이 자유롭게 국내에 수입되다보니 경쟁하기가 벅차다”고 말했다. 동시에 수입산의 약점이던 AS 문제도 나날이 개선되다보니 경쟁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만 엠에스아이(MSI)사는 1년간 생산하는 물량이 잘 나간다는 국내업체보다 7배나 많은 250만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능력, 원가 자체에서 사실상 경쟁이 안된다. 국내 그래픽카드 제조업계는 회사발전에 토대가 된 사업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을 계속 가져간다는 것도 무리라는 분위기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용산중심의 중소 수입사들만으로도 이처럼 힘든데 대만, 중국의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이 직접 진출한다면 상황은 불보듯 뻔하다”며 사업존폐 여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차별된 경쟁력 확보 외엔 없다=관련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그래픽카드 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월 3만∼5만대에서 시장이 형성중이라고 업계는 밝혔다. 이 중 국산 제품과 수입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50 대 50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이처럼 시장을 수성할 수 있던 이유로 꼽히는 것은 바로 국산 제품의 차별화된 서비스로 분석된다. 일례로 슈마일렉트론은 칩세트 제조사가 제공하는 기본 설계와 달리 자체 기술을 통해 빛을 발산하는 쿨러 시스템을 달거나 좀 더 향상된 메모리를 부착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성공사례를 만들자 대만업체들이 이를 모방하게 만든 적이 있다. 인사이드텔넷컴도 품질향상과 동시에 서비스 강화를 통해 수입산이 전통적으로 강한 지방시장을 빼앗아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답은 소비자에게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소비자는 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 비싸긴 하지만 믿을 만하고 성능도 안정적이다. 디자인도 맘에 들어 국산 그래픽카드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답했다.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급업체가 살아남는 당연한 시장논리가 그래픽카드 업계에 불고 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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