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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2)노년층 정보화 실태


카테고리 : 레포트 > 기타
파일이름 :2003031.jpg
문서분량 : 1 page 등록인 : etnews
문서뷰어 : 뷰어없음 등록/수정일 : 03.03.13 / 0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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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2)노년층 정보화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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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얼굴에 충만한 미소, 노래하는 듯 신나는 일상. 10∼20대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이러한 느낌과 표정은 사실 ‘70대 어르신들’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할아버지들의 눅눅하기만한 일상을 유쾌하고 즐거운 ‘산보’로 만들어준 것이다. 이들의 봄날 인터넷 산보를 좇아가 보았다.
 ◇오전 8시 10분=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사는 유성균씨(70)는 아침식사를 마친 후 곧 가방을 챙겨 강서구 등촌동 정보문화진흥원으로 향한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인터넷활용 및 홈페이지 제작과정을 수강하기 위해서다.
 오전 10시부터 강의가 시작돼 여유는 있지만 언제나 유씨가 걸음을 서두르는 것은 10분이라도 일찍 도착해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는 뜻이다. 자신이 ‘뭔가 하고 있다’는 전율 같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옛날 한글을 배울 때 좀더 빨리, 좀더 많이 배우고 싶던 바로 그 조바심이 인터넷을 접한 그 다음부터 온 마음에 들어차 있는 것이다.
 ◇오전 9시 20분=등촌동 정보문화진흥원 1층 교육센터.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세어 언뜻 보기에도 황혼을 한참 넘긴 듯한 노인들 여럿이 제각기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 흡사 ‘할아버지들을 위한 PC방’을 연상시킨다.
 그들 사이에서 이방준씨(71·서울 양천구 신정동)를 찾아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PC에 연결된 헤드폰을 끼고 어깨까지 들썩여가며 인터넷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못해 천진스럽기까지 하다.
 헤드폰에선 태진아의 ‘노란손수건’이 흘러나온다. 얼마전 배운 노래듣기 사이트를 찾아 자신이 고른 노래를 들으며 흠뻑 빠져있는 것이다. 70세를 넘긴 그에게 인터넷은 옛날 청춘시절과는 또다른 노란손수건이 돼준 것이다.
 ◇오전 9시 30분=유씨가 늘상 앉던 PC에 자리를 잡고, 제일 먼저하는 일은 하이텔에 접속하는 일이다. 먼저 자신에게 배달된 e메일이 어떤 게 있나를 확인한 뒤 급한 답장은 보내고, 동료들의 소식을 듣기도 한다. 유씨가 굳이 하이텔로 메일창구를 일원화한 것은 2년 전 영등포구 당산전화국 3층 하이텔정보교육원에서 인터넷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그때의 고마움과 애착이 가슴깊이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로 정년퇴직한 유씨가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받고 있는 e메일은 세브란스병원 장애인재활원 환자들로부터 온 것들이다. 유씨가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동기도 함께 치료하며 울고 웃었던 장애인들로부터 나왔다. 사지가 다 잘려나가고도 입에 막대기를 물고, 인터넷을 통해 자기의견을 주고받으며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이 지울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오전 10시=인터넷 강의가 시작되면 이씨는 꼭 앞자리를 잡는다. 2년 전 양천구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교육을 받으면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오전·오후 두 개반으로 나눠 36명을 뽑는 양천구복지관 인터넷교육을 듣기 위해서는 새벽 2∼3시부터 줄을 서기 일쑤였다. 새벽잠까지 설쳐가며 배우기 시작한 인터넷을 지난해 11월 정보문화진흥원 교육센터로 옮겨왔다고 해서 게을리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요즘 이씨는 질문 많이 하는 수강생으로 소문나 있다. 홈페이지 제작을 공부하면서 질문 횟수가 부쩍 늘었다. 금방 듣고도 창을 하나 옮겨갔다 오면 까맣게 생각이 안나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들게 만든다.
 ◇오전 11시 50분=강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유씨는 오늘도 큰 것 하나를 배웠다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요즘 유씨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예쁘게 꾸미고, 풍부한 내용으로 채우는 데 몰두해있다. 세상을 아름답게 정리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식들에게 일일이 해줄 수 없는 말, 정다운 기억들을 하나하나 홈페이지에 담습니다. 유언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지만 집안의 가풍과 소망도 글로 남깁니다. 나중에 제 육신은 가지만 전 홈페이지 속에 영원히 사는 셈이죠. 손자·손녀들에게 이보다 더 값진 선물이 있겠습니까.”
 ◇오후 1시 30분=점심을 먹고 난 이씨는 오늘 배운 것을 정리할 겸해서 다시 PC 앞에 앉는다. 이씨는 요즘 인터넷의 매력을 ‘공짜 메일’에서 한껏 실감하고 있다. 업무차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장기출장을 떠난 둘째 아들로부터 메일이 와있으면 그 매력은 더욱 커진다. 국제전화로 걸면 짧은 안부만 묻더라도 몇 천원씩이 나가지만 메일은 공짜인 셈이다. 그동안 인터넷을 배우기 위해 치른 노력과 정성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다.
 국경없이 광대한 인터넷세상을 이씨는 멀리 떨어져있는 아들과의 e메일 대화를 통해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인터넷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전혀 느끼지 못했을 기쁨이다.
 ◇오후 3시=유씨는 몇 달간 매달려온 초대형 프로젝트(?)를 오늘도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유관순 열사의 고손자이자 고흥 유씨종친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앞으로 ‘고흥유씨 온라인대동보’를 만들어낼 꿈에 부풀어 있다. 이미 북한 개성땅이 훤히 내다보이는 애기봉에 올라 디지털카메라로 고흥유씨 시조의 묘 부근을 촬영해 놓았고, 이를 동영상으로 대동보에 실을 예정이다.
 종친회 이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씨는 도농간 정보화나누기 활동도 적극 실천해왔다. 지난해 신한은행에서 쓰던 중고 PC 30대를 기증 형식으로 받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 정보화용으로 전달해준 것이다. 컴퓨터 활용이전만 해도 양우농가가 많은 평범한 시골마을이었지만 컴퓨터 보급 이후 서울의 대형농축산물시장과 온라인거래까지 오가는 정보화마을로 거듭났다.
 ◇오후 3시 30분=이씨는 네이버에서 능수능란하게 검색도 하고 정보도 찾으면서 그야말로 ‘서핑’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최근까지만 해도 네이버를 활용할 수 없었다. 세 차례인가 다른 ID로 등록하면서 비밀번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마침내 이씨는 10살짜리 손녀딸에게 SOS를 쳤고 손녀딸은 네이버측의 요청에 따라 이씨의 신분증을 스캔받아 보내고서야 ID를 하나로 정리할 수 있었다. 네이버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면서 인터넷이 할아버지와 손녀딸 사이의 60년 세월을 말끔히 메워준 셈이다. 요즘 이씨는 다섯 아들로부터 난 10명의 손자·손녀가 어느때 집에 몰려와도 걱정이 없다. 지난해 8월에 설치한 초고속인터넷으로 인터넷 게임까지 즐기며 어느새 쌓여가는 두터운 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4시 10분=유성균씨와 이방준씨는 정보문화진흥원을 나서 한사람은 동료의사가 요청한 세미나 자료를 챙겨 병원으로, 또 한사람은 아내가 봄철 운동교육을 받고 있는 양천구복지관으로 향한다. 서로 가는 길은 다르지만 두 노인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뭔가에 열심히 몰두하는 그들에게 ‘나이 70’은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인터뷰: 이은경 정보문화진흥원 교육센터 강사 
 “정부기관이나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컴퓨터·인터넷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널리 알리는 데는 너무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자주 모이는 노인정이나 마을회관 등을 찾아다니면서 적극적으로 교육수혜자를 늘렸으면 합니다. 좋은 시설, 좋은 프로그램도 제대로 활용돼야 진정 좋은 것 아닙니까.”
 3년째 정보문화진흥원 교육센터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은경씨(31)는 아직도 부족한 공무원들의 노력을 꼬집었다. 시설을 만들어놓기만 해서는 성이 안차고 직접 사람들을 가르쳐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적극성이 배어나왔다.
 “55세 이상 할아버지·할머니들을 1년반째 가르치고 있는데 그들의 반응이 너무 감동적이고 기뻐서 하루하루가 보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가 천국이다’며 감출 수 없는 기쁨을 토로하기도 하십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는 한 저는 언제나 기쁘게 인터넷 동반자가 되어드릴 작정입니다.”
 한달에 이씨가 새롭게 맞는 할아버지·할머니 수강생이 60∼90명 정도 되므로 벌써 이씨를 통해 컴퓨터를 익히고 인터넷을 활용하게 된 노령층 수가 줄잡아 1000여명은 되는 것이다.
 “마우스를 잡기도 전에 겁부터 먹곤하셨던 분들이 교육을 마치고, 자신있게 컴퓨터 앞에 앉을 때 가장 기쁩니다. 이젠 교육 뒤에 스스로 스터디그룹이나 집중교육반까지 만들어 할아버지·할머니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문제를 공동 해결해나가는 것을 보면 시대의 변화를 한눈에 읽을 수 있습니다.”
 이씨는 “현재 일하고 있는 정보문화진흥원 교육센터가 다른 구청이나 지방의 시설에 비해 궁전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수강생들의 뜨거운 의지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수준에 만족해야 하는 시설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도 할아버지·할머니들로부터 ‘손주며느리 삼았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는 이씨는 인터넷이 인간에게 준 명제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편리하게, 누구에게나 열린 세상’을 일구어가는 진정한 숨은 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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