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자금은 현재와 같이 기업 운영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돈의 흐름’이 대기업 등에 편중되고 경제적 교섭력이 약한 중소기업에는 유입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소·벤처기업들에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이를 아는 정부에서도 다양한 정책자금을 내놓고 있다. 특히 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연초부터 시작, 상반기에 많은 예산들이 집중 집행됨에 따라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들이 새해 초반부터 계획을 세워 수혜를 노려볼 만하다. 중소기업이나 벤처창업자 등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가운데 금리·상환조건 등이 가장 유리한 돈이 정책자금이다. 따라서 자금조달의 첫 단계는 정책자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좋다. 특히 지금과 같은 돈가뭄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책자금은 국가산업발전을 최종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지원분야가 특정분야로 한정돼 있다. 때문에 자금의 종류와 지원대상 지원조건 등을 어느 정도 알고 접근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벤처기업 지원사업의 경우 중기청·산자부·정통부·문화부·보건복지부·농림부·과기부 등 7개 부처에서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현재 7조1537억원에 달하는 중소기업 정책자금 중 중기청이 2조6570억원으로 가장 많고 산업자원부 1조7597억원, 과기부 9232억원 등이다. 정부의 중소기업 금융지원 체계는 정책자금, 신용보증, 총액한도대출 제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에는 과거 공급자 위주의 지원방식에서 탈피해 수요자 중심의 지원방식을 도모하는 등 질적인 측면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올해 중소기업에 지원되는 주요 정책자금들을 살펴보면 먼저 기술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혁신개발사업과 산·학·연 공동기술개발사업 등이 있다. 또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에 필요한 자금(개발기술사업화 자금)도 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을 창업한 지 3년을 기준으로 창업단계의 중소기업에는 중소·벤처창업자금을, 성숙단계에 있는 중소기업에는 용도에 따라 구조개선자금과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등 중소기업의 성장단계별로 필요한 자금을 제공중이다. 또 과거 제조업에 한정한 정책자금 지원체계에서 벗어나 제조 관련 서비스업에 대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소상공인 창업자금을 통해 일반 소상공인에 대한 정책자금을 늘려가고 있다. 신용보증제도는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이 은행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신용보증기관이 지급보증함으로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중소기업의 신용보증을 위해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이 운영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일반 중소기업을, 기술신용보증기금은 벤처기업 등 기술력있는 기업을, 그리고 지역신용보증재단은 지역특화기업과 지역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등 중소기업의 수요에 특화된 보증지원을 시행중이다. 특히 이들 신용보증기관들은 지속적인 상품개발을 통해 극심한 신용경색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들의 자금애로 해소에 큰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단독으로 회사채 불가능한 벤처기업들을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외 벤처프라이머리 CBO’ 발행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은행이 더욱 적극적으로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총액한도대출제도와 중소기업 의무대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정책자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정책자금을 받는 데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업 이후 자사의 성장단계를 가늠해보고 언제 얼마 만큼의 돈이 필요한지 계획부터 짜야 한다. 그런 전략이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가 곧바로 성패를 좌우한다는 게 시장에서 판가름나고 있다. 실제로 전략 없이 자금의 성격과 규모를 불문하고 자금을 유치했다가 낭패를 본 기업이 부지기수다. 자금의 용도와 규모가 맞지 않는 돈을 무조건 유치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자, 상환기간, 자금의 용도, 지원 시기 등 지원 계획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정부자금은 무조건 받고 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지만 앞으로는 정책자금의 사후관리가 상당히 강화돼 용도 이외의 자금 사용 등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질 것”이라며 “자금을 받은 이후에도 사용목적과 시기에 따라 적절히 자금을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책자금 이것이 문제다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부처·기능별 지원시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정책자금 지원제도다. 정부는 재정을 직접 동원하거나 공적재원을 활용해 시설자금, 운전자금, 기술개발자금 등 다양한 용도의 자금을 지원한다. 정책자금 지원제도는 70년대부터 있었으나 IMF 이후 지원규모와 내용 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대돼 왔다. 2003년 계획 기준으로 중소기업 관련 정책자금의 총 재원규모는 7조원을 상회하며 이중 중소기업에 지원되는 규모는 5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자금은 대기업 중심의 자원배분이 팽배하던 시기에 중소기업에 의미있고 소중한 자금줄 역할을 해냈으며, 어려운 여건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정책자금의 규모가 늘어나고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지원에 나서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자금 지원제도가 너무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현재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곳은 모두 12개 부처에 이르고 세부 자금도 100여개에 달한다. 부처별 지원체제는 부처간 선의의 정책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경쟁이 지나쳐 정책 목적의 일관성을 훼손하거나 지원 우선순위의 충실한 반영과 지원 형평성보다는 부처마다 특정분야에 유사한 지원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등 부정적 측면이 더 많다. 또 지원사업을 서로 모방하고 이를 다시 지방자치단체들이 베끼는 경우도 있다. 또 우선순위가 낮은 분야의 지원조건이 높아야 할 분야보다 오히려 좋거나 지원목적과 자금 용도가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운용 부처에 따라 조건이 제각각인 경우도 있다. 이는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정책 목적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불필요한 민원의 소지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편중·중복 지원으로 한번 정책자금을 받은 업체가 계속 자금을 타가는 문제도 있다. 실제 산업연구원이 정책자금을 받은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99∼2001년 기간 중 2회 이상 지원받은 업체의 비율이 67.8%에 달했고 시설자금만 4회 이상 받은 경우도 9.9%나 됐다. 물론 일정한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매년 정책자금을 탈 수도 있으나 한 기업이 동일 용도의 자금을 수차례 지원받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부도 문제 개선을 위해 각 부처의 정책자금 지원현황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정책자금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지원시책이 부처별로 이뤄지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통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정책자금 지원도 정책환경의 변화를 반영, 좀더 수요자 친화적이면서도 지원 원칙과 일관성에 충실해 운용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정 건전화가 크게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필요성은 앞으로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특히 국민세금으로 기업에 지원하는 것인 만큼 그 씀씀이는 좀더 명확한 목적과 효과에 대한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결국 중소기업들이 바라는 지원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키기 위해 지원체계의 내실화와 집행 효율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들이 강구돼야 한다. 부처별 운용체계의 틀에서 벗어나 통합 운용체계를 갖춰 운용 효율화를 추진하고 지원업체를 선별하는 심사 추천기능도 통합해야 한다. 정책자금의 존재 이유는 시장금융과의 차별화 및 보완에 있다. 무분별한 퍼주기식 지원보다는 시장에서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정부가 돕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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