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 새해는 우리 경제에 있어 ‘통상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예고되는 한해다. 2003년 한해 동안 해결해야 할 굵직한 통상현안만 해도 그렇다. 우선 3년간의 지리한 협상 끝에 지난해 10월 타결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연초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비준 등을 거쳐 상반기께는 정식 발효돼야 한다. 일본·싱가포르·태국·호주·뉴질랜드 등 그동안 FTA를 추진해온 국가들과의 협상도 가시적 매듭을 지어야 한다. 또 내년 3월 말까지는 도하개발아젠다(DDA)와 관련한 ‘통신 등 서비스 시장 개방 요구안’도 세계무역기구(WTO)측에 제출해야만 한다. 1960년대 이후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구사해온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다자주의에 입각해 통상정책을 추진해 왔다. 즉 GATT·WTO 체제에 익숙해 있는 우리나라는 FTA와 같은 지역경제주의에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칠레와의 FTA 체결에만 3년이 걸리는 우여곡절을 거치는 등 지역주의·블록경제에 관해서는 별다른 협상 노하우나 통상전략이 없다시피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FTA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한국는 이제야 한 건의 FTA를 체결하기 시작했지만 세계시장에는 이미 200개 가까운 FTA가 운용 중이다. 이 중 유럽연합(EU)은 경제통합을 넘어 이제 정치·문화의 대집결까지 노리고 있다. 체결국과 역외국간 통상이익의 간극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10년간 멕시코는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을 5.5%포인트 끌어올려 지난 2001년 11.5%를 기록했다. 반면 NAFTA의 역외국인 우리나라는 이 기간 중 0.5%포인트 하락, 3.1%의 점유율에 그쳤다. 전기·전자 및 IT부문에 있어 비교적 세계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은 FTA 체결을 통해 국제표준의 선점, 수출시장의 다변화, R&D와 생산의 양분화 등을 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한·중·일 동북아 3국의 FTA는 북미(NAFTA), 유럽(EU), 동남아(AFTA) 지역에서 점차 다면화·멀티화되고 있는 블록경제에 대한 대항마로 부각되고 있다. IT분야의 연구와 생산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는 이들 3국은 첨단 전기·전자 및 IT분야에서 상호간 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문이 많기 때문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FTA, 차기정부선 어떻게 추진되나 “한·칠레간 FTA의 국회 비준동의는 농산물 등 피해품목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하고 국민공감대가 형성된 후 신중하게 처리할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우리 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 현장. 성난 농민의 계란세례까지 받던 노 당선자는 기존 FTA 정책에 대한 변화를 이같이 예고했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노 당선자의 당시 발언은 다분히 농민표를 의식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그 이상의 의미부여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정인교 FTA연구팀장은 “선거기간 중 노 당선자가 FTA 등 통상정책에 관해 다소 유보적 입장을 보이긴 했으나 대통령의 입장에서 실제 정책입안시 국제사회와의 기존 약속을 뒤엎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오히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농민 등 일부 피해계층의 보상문제가 본격 대두됨에 따라 차기 정부의 FTA 정책이 보다 내실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정재화 FTA연구팀장은 “FTA 등 통상 관련 정책은 국가경제의 전체 틀안에서 재단되고 다듬어져야 한다”며 “다만 현재까지 노 당선자의 막후 정책 브레인 중 통상 관련 전문가 집단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것은 다소 염려가 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 당선자는 지난달 10일 경제분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개방 전에 조사를 충분히 하고 보상대책도 만들어 보상계획과 개방협약이 함께 국회에 통과되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하자”며 “제도화하는 과정에서도 농정간에, 또는 개방으로 이익보는 수출기업 사이에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류경동기자>
지난 10월말 한국과 칠레간 FTA이 타결되는 과정에서 냉장고·세탁기 등 전자제품이 예외품목으로 규정되면서 새삼 정보기술(IT) 산업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는 FTA의 유력한 차기 체결국으로 꼽히는 일본·중국 등과의 협상과정에서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IT산업은 전통산업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아직 초보단계다. 특히 국제 표준화작업은 이제야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FTA시대가 도래하면 국제표준 선점여부는 경쟁 우위 확보에 있어 핵심항목이 된다. 다행히 한·중·일 동북아 3국의 전자제품 생산규모는 국제 표준전쟁에서 이미 유리한 고지가 되고 있다. 이들 국가가 FTA라는 틀속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면 세계 IT산업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IT산업에 관한한 동북아 3국의 파워는 막강하다. 한국은 D램, TFT LCD, CD롬 등에서 일본을 따라잡아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나섰고, 초고속인터넷과 이동통신의 인프라도 세계에서 가장 앞선다. 일본은 장기간의 경기부진 속에서도 IT부품과 소재의 기술에서 여전히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은 개방화정책 추진과 외자 유치에 힘입어 세계 가전시장을 이미 점령했으며 무한한 경제활동 인력과 거대한 소비 잠재수요를 지니고 있다. 이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3국이 FTA라는 수단을 통해 힘을 발휘할 때 세계 IT시장에서 절대강자의 자리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당장 FTA를 체결하기에는 아직까지 구습이 잔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글로벌마켓에서 그동안 파트너라기 보다는 경쟁상대였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다. 한국은 지난해에만 14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156억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던 96년 이후 가장 큰 액수다. 특히 이중 절반가량이 전자제품 교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기술로는 일본을,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는 중국을 당할 수가 없다. 부가가치가 더 높은 기술부품 분야로의 특화가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또 부품·소재, 가전 등 분야에 따라서는 3국간 FTA 체결이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의 문호개방, 즉 메이지유신은 불가능할 것으로만 여겼던 서양의 선진기술을 오늘날 일본이 따라잡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민관이 합심해 IT산업의 마스터플랜을 수립, FTA에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IT산업은 한 차원 높은 도약의 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동북아 3국의 FTA 체결은 시대의 요구이자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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