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 및 부품업계는 안으로는 업종별, 업체별로 차별화와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됐으며, 밖으로는 경쟁국들의 견제와 추격속에서 국내업체들의 위기의식이 어느 해보다 높았던 한해였다. 분야별로는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와 2차전지가 메모리 반도체의 뒤를 이을 차세대 매머드급 부품산업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휴대폰 등 모바일기기 시장의 사상 유례없는 호황으로 관련 부품산업이 일년 내내 활황을 구가했다. 그러나 PCB·콘덴서·저항·커넥터 등 일반 부품산업은 전반적으로 세계적인 IT경기 침체에 따른 공급가격 인하 압력과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 그리고 주요 전자업체들의 생산기지 확대 이전으로 인한 절대수요 감소 등 악재가 겹치면서 몹시 견디기 힘든 한해였다. 특히 세트업체들이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원가절감 차원에서 ‘글로벌 소싱’이란 명목아래 국제 경쟁입찰 형태로 부품 구매방식을 전환, 대다수 부품업계의 원성을 샀다. 부품업계는 이에따라 해외 시장 진출과 고부가화를 가속화하는 한편 사업구조를 재배치하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반도체=지난해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었던 반도체시장은 올해 역시 당초 기대와 달리 회복이 늦어져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데이터퀘스트·IDC·세미코 등 주요 시장 조사기관들은 올해 반도체시장 규모를 1400억∼1500억달러, 강보합세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따라 반도체업체들은 비용 절감과 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해 공동기술 개발 및 전략적 제휴 등에 힘을 쏟기도 했다. 특히 300㎜급 대형 웨이퍼 가공을 위한 설비 투자와 ㎚급 미세회로공정 개발을 위한 기술 협력에 집중하기도 했다. 품목별로 지난해 역성장의 주범이었던 D램시장이 40%대에 육박하는 고성장세를 실현했다. 주력 제품이 128MB에서 256MB로 바뀌었으며 DDR SD램이 시장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맡기도 했다. 자연히 DDR시장에 발빠르게 대응한 삼성전자와 대만 난야 등이 호조세를 보였으나 매각문제로 진통을 겪었던 하이닉스와 투자여력이 낮은 마이크론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플래시메모리 시장도 도시바·삼성전자·샌디스크 등이 주도하고 있는 데이터 저장(Nand)형을 중심으로 20%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반도체 파운드리시장도 종합반도체업체(IDM)들과 반도체설계업체(fabless)들의 주문생산 회복으로 지난해보다 20% 이상 성장해 80억달러가 넘어설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그동안 반도체시장을 견인해온 PC시장이 지난해 사상 첫 역성장에 이어 올해도 교체수요의 지연으로 회복되지 않은 데다 닷컴기업 붕괴 이후 통신시스템과 네트워크 장비 등 기업솔루션 시장이 불황을 겪으면서 전체 시장의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디스플레이=한마디로 ‘TFT LCD의 해’였다. 브라운관(CRT)을 대체하며 모니터·TV 등 영상기기 시장을 공략한 LCD는 LG필립스LCD와 삼성전자, 쌍두마차의 선전 속에서 작년 대비 50%에 가까운 성장세를 구가했다. 수출도 급증,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60억달러 돌파가 무난할 전망이다. 특히 LG와 삼성은 세계 최초로 5세대 라인을 잇따라 가동, 생산능력·시장지배력 등 모든면에서 경쟁국인 대만과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정상을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올초부터 급등세를 탔던 공급가격이 지난 5월말을 정점으로 급락하기 시작, 연말께엔 사상 최저점이었던 지난해 3분기말보다도 10∼15% 하락, 채산성은 기대에 다소 못미쳤다는 평이다. TFT LCD의 강세속에 CRT업계, 특히 모니터용 CRT(CDT)는 대체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상반기 TFT LCD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반대급부와 2002 한일월드컵 특수 등으로 어려운 환경속에서 비교적 선전했다. 특히 도시바와 마쓰시타가 CRT부문을 합병하는 등 구조조정 바람속에서 삼성SDI·LG필립스디스플레이등 국내업체들은 시장지배력이 더욱 높아졌다. PDP·유기EL 등 차세대 평판디스플레이(FPD)가 급부상한 것도 올해 두드러진 변화중 하나다. PDP는 월드컵 4강신화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진입했으며, 유기EL은 마침내 풀컬러제품이 휴대폰 외부창에 장착되며 시장에 데뷔했다. 특히 STN LCD가 휴대폰시장을 거의 석권한 가운데 TFT LCD와 유기EL이 서서히 소형 디스플레이 시장을 파고든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차전지=올해 한국 휴대폰신화의 대표적인 수혜자는 다름 아닌 2차전지 부문이다. 국내 휴대폰 생산의 급증으로 올해 리튬이온전지 및 리튬이온 폴리머전지 등 국내 2차전지 산업은 확실히 뿌리를 내린 한해였다. 특히 LG화학과 삼성SDI 등은 사상 최초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했으며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2차전지 왕국 일본을 맹렬히 추격하기도 했다. 이에따라 지난 2000년 2.5%에 불과했던 한국의 세계 시장점유율이 올해 15.8%로 수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개별기업으로는 지난해 7위였던 삼성SDI가 올해 두계단 상승해 5위로 뛰어 올랐으며, 10위를 기록했던 LG화학은 NEC와 히타치막셀을 제치고 7위권에 진입했다. 국내업체들의 선전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올해 휴대폰·PDA 등 모바일 기기의 국내 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음에도 불구, 리튬계 2차전지의 수입액수는 지난해보다 8000만달러 정도 줄었다. 이에 따라 2차전지의 국산화율도 99년 0.9%에서 올해 35%로 대폭 신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양적인 성장은 물론 기술적인 발전도 눈부셨다. 삼성·LG 양사는 올해 세계 최소 수준인 2200㎃ 용량의 제품을 개발했으며, 전량 수입되고 있는 양·음극 소재가 개발돼 국산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와함께 리튬설퍼전지, 연료전지 등 차세대 2차전지 개발 프로젝트로 잇따라 진행됐다. ◇일반부품=일반부품을 대표하는 PCB는 IT경기 침체로 삼성·LG 등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올해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정도로 침체국면을 보였다. 특히 디지텍·휴닉스 등 몇몇 중소업체의 경우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를 내 충격을 던져줬다. 그러나 휴대폰 특수로 인한 다층기판 및 빌드업기판 수요가 폭발, 업계의 숨통을 터주기도 했다. 콘덴서는 올해 과당 경쟁 심화로 사업을 포기해야할 정도로 채산성이 악화됐다. 삼성전기가 콘덴서사업을 삼화전기에 매각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삼영전자·삼화전기·파츠닉 등 업체는 원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내 공장 설비중 일부를 중국·베트남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커넥터는 희비가 엇갈렸다. 휴대폰, TFT LCD 등에 탑재되는 커넥터업계는 호황을 구가한 반면, 가전·통신·컴퓨터용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특히 통신장비 신규 설치가 얼어붙으면서 커넥터 수요도 이와 비례해 감소했다. 여기에 국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가격의 중국산이 밀려와 그나마 남아있던 시장까지 잠식했다. 이밖에 정밀모터, 소정디바이스, 저항 등 대부분의 일반부품 업체들이 후방산업인 가전, 통신, 컴퓨터시장의 이 경기침체 여파로 어려운 한해를 보내야 했다. 공장자동화(FA)는 작년 대비 소폭 성장세를 보였으나 자동차와 2차전지 등 일부 호황업종은 시설투자를 주도하고 나머지 제조업종은 움츠리는 모습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졌다. 주력아이템인 PLC는 올해 1200억원, 인버터의 경우 1100억원 규모로 추산돼 지난해보다 5∼10% 가량 신장할 것으로 보인다.
◆화제의 인물들 다사다난했던 반도체 부문에서 올해의 최고 이슈라면 단연 하이닉스반도체 처리 문제와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의 통합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올초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의 매각협상에서 결렬, 다시 선정상화 후매각에 이르기까지 하이닉스 문제는 1년 내내 반도체업계 최대 관심사였다. 하이닉스 처리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박종섭 전 하이닉스 사장을 비롯해 진념 전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 전윤철 신임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 등이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박종섭 전 사장은 하이닉스 메모리부문 해외매각을 위해 채권단과 함께 5개월동안 미국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협상에 나섰지만 본계약 체결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하이닉스이사회에서 MOU안이 부결처리됨에 따라 국내는 물론 전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결국 이사회 부결을 계기로 사표를 제출해 하이닉스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장관직을 내놓은 진념 전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과 장관직을 계승한 전윤철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은 일관성 있는 하이닉스 매각 논리로 찬성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두 사람은 특히 하이닉스 문제의 조속 해결론을 펼치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를 통합하면서 주목받았던 윤대근 사장도 화제의 인물이다. 윤 사장은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로 통합회사인 동부아남반도체(가칭)의 수장으로서 대만 TSMC와 UMC 등이 장악하고 있는 파운드리시장에서 영세하기만 했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력을 드높일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반도체산업의 격변기 속에서 다국적 반도체업체들의 지사장도 새 인물로 대거 교체됐다. 커넥선트가 무선통신사업부를 스카이웍스로 분사시키면서 신임지사장에 노기익씨를 선임했고 스카이웍스는 전 커넥선트 지사장이었던 손명원씨가 맡았다. AMD는 사업영역을 무선통신 분야로 확대하기 위해 한국지사장을 종전 박치만씨 대신 메모리그룹 이사였던 정철화씨를 기용했다. 반도체에 이은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3강의 또 하나 각축장이었던 TFT LCD분야에서는 삼성전자AMLCD사업부 이상완 사장과 LG필립스LCD의 구본준 사장이 주목을 받았다. TFT LCD는 특히 한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분야여서 두 사람의 행보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삼성 TFT LCD사업을 10년 이상 이끌고 있는 이 사장은 세계 TFT LCD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중 하나다. 그는 올해 역시 각종 국내외 디스플레이 학술대회, 콘퍼런스, 전시회 등에서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지난 8월 대구에서 열린 ‘IMID2002’ 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기존 샤프보다 훨씬 6세대 규격을 발표,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LG그룹 전자부문 지주회사인 LGEI 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구본준 사장도 올해 줄곧 화제를 뿌렸던 인물. 구 사장은 지난 5월 세계 첫 5세대 라인 가동을 시작으로 42인치 및 52인치 LCD 개발, 구리배선 TFT LCD개발 등 LG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개발 프로모션을 진두지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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