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국은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국에서 수백만의 응원단이 거리를 메웠다. 이들 응원단은 한국팀의 선전에 열광했고 이는 곧 한국 축구의 밝은 앞날을 예고했다. 세계적인 축구강국이 그렇듯이 온국민이 축구경기에 열광하고 나아가서는 선수로 뛰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한국도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축구 강국의 대열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월드컵은 바로 저변확대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 행사였다. 문화콘텐츠 산업도 마찬가지다. 국산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난번 월드컵때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국민적인 관심과 호응이 필요하다.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문화콘텐츠가 개발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한국이 온라인게임으로 세계 게임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데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블리자드사가 개발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서만 전세계 판매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만장 이상이 팔여나간데다 이 게임의 세계 최고수가 한국 선수일 정도로 게임 붐이 일면서 한국에서도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같은 세계 게임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또 이는 결국 한국이 온라인게임이라는 게임장르에서는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할 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또 국산영화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좋은 사례다. ‘쉬리’를 시작으로 관객유치에 성공한 영화들이 속속 제작되면서 국산영화에 대한 투자 붐이 일고 또 국산영화를 찾는 관객이 몰려들면서 최근에는 국산영화가 세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할 정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도시근로자가구의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지난 97년말 IMF 위기로 급감했던 소득이 점차 늘면서 가계수지에서 교양오락용품 및 서비스 이용에 투자하는 교양오락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한 증가세를 그리고 있다. 이는 문화콘텐츠 시장이 확대일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주5일제가 본격 시행될 경우 이 부문에 대한 가계지출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여 앞으로 국내 문화콘텐츠 산업발전을 위한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의 경우 아직 문화콘텐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특히 문화콘텐츠라고 하면 순수문화와 예술과는 대치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컴퓨터나 TV를 통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화된 문화콘텐츠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실제 현장을 찾아가야 볼 수 있는 공연이나 전람회 등에 대한 소비가 줄어들고 이는 결국 순수 문화·예술활동을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된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같은 인식은 문화콘텐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 순수문화·예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또는 단순히 표면적으로 불거진 문제만을 바라보고 판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콘텐츠는 기존 순수문화·예술활동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화 추세에 맞춰 순수문화와 예술활동을 발전시키고 수요자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같은 인식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도록 문화콘텐츠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 청소년이 선호하는 콘텐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게임중독이나 인터넷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물을 비롯한 청소년 유해물이 범람하고 있고 온라인게임이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보니 이같은 학부모들의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통계청이 인터넷 이용부문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청년층인 20∼24세의 경우 전자우편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반면 학생층인 15∼19세의 경우 게임오락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콘텐츠로 나타났다. 자녀에게 원하는 것이 많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자녀들이 인터넷이나 게임에 빠져드는 모습이 불안하게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일부 문화콘텐츠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가 유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이같은 문제해소 등 문화콘텐츠에 우려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콘텐츠 사용환경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인 만큼 문화콘텐츠 산업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 문화콘텐츠에 대한 제대로 된 이용문화 정착이 선행돼야 한다. 물론 콘텐츠 이용문화는 소비자의 의식과 행동에 대한 문제여서 캠페인 활동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온라인게임 업체 및 청소년단체나 학계 인사들과 함께 게임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문화진흥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선택한 방안이다. 문화콘텐츠 창작활동에 참여하는 선수층을 두텁게 해야 하는 일도 이용문화 정착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건전한 이용문화가 소비자 측면에서는 저변확대를 위한 과제라면 창작활성화는 공급자 측면의 저변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콘텐츠 관련 테마시설이나 박물관·전문도서관 등과 같은 인프라 확충을 통해 국민이 일상 생활속에서 문화콘텐츠를 쉽게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또 관련기업은 물론 아마추어 개발자까지 참여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 페스티벌과 이벤트를 늘려나가고 이들의 활동을 격려할 수 있는 공모전을 확대해 나가는 등 다양한 유도책이 필요하다. 또 이들 수요자와 공급자를 원활하게 연결해줄 수 있도록 문화콘텐츠에 대한 체계적인 유통시스템을 정립하는 일도 시장활성화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내에는 현재 저작권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저작권을 보호하면서 이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통체계가 부재해 시장활성화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함께 문화콘텐츠 유통관리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문화부는 이를 위해 문화콘텐츠를 체계적으로 관리·유통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디지털시대에 적합한 유통환경을 조성하고 창작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어서 기대되는 바가 크다. 다만 문화콘텐츠 산업이 디지털 기술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생성된 새로운 산업인 만큼 관련부처와 연계해 기술적인 부분으로까지 사업내용에 포함시켜 보다 완벽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권준모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 jmk@khu.ac.kr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은 사랑(성)과 공격성이라고 했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 가서 둘러보자. 여러 장르의 영화들이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인기 영화들은 두 가지 장르 중에 포함될 것이다. 문화콘텐츠 사업으로 성공하려면 프로이드가 지적한 이 성과 폭력의 심리를 잘 이용해야만 한다. 디지털 콘텐츠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포르노물 시장이 그 어떤 종류의 콘텐츠보다도 더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게임시장에서도 더 폭력적인 게임일수록 더 잘 팔린다는 것은 둠, 모탈컴뱃, 퀘이크, 듀크누켐, GTA의 예에서 이미 확증됐다. 바로 여기에 문화콘텐츠 사업의 딜레마가 있다. 사업가의 입장에선 수익을 많이 내려면 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일 경우 성인등급을 받게 돼 오히려 수익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성인콘텐츠 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소년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업상 있을 수 없는 판단이다. 성인등급을 받은 게임은 PC방에서 제공되지 못하며 음악은 방송에 나오지 못하므로 엄청난 수요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문화콘텐츠 사업가의 행동을 예측해 보자. 가장 합리적인(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려는) 사업가라면 잘 팔릴 정도로 충분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면서도 성인등급을 받지 않는 수위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즉 사업가들은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이 두 경계선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한다. 최근에 논란이 됐던 리니지의 경우도 정확하게 여기에 해당한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문화콘텐츠 업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것이다. 가끔 게임업계 혹은 만화업계 종사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직업을 말하면 마치 ‘불량식품’ 판매업자 취급을 한다는 불평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본다면 그와 같은 인식은 일리가 없지도 않다. 불량식품이란 소비자가 섭취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식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만약 문화콘텐츠업체가 청소년들이 섭취하기에 적절하지 않는 내용을 제공한다면 이는 정확하게 불량식품 판매업자의 정의와 일치할 것이다. 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콘텐츠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선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색소와 첨가제를 넣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만약 문화콘텐츠의 성인시장이 담보된다면 달라질 것이다. 다행히도 국내 문화콘텐츠의 성인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 게이머들의 평균연령은 더이상 10대가 아니며 애니메이션도 더 이상 아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젠 성인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됐다. 더이상 불량식품업자처럼 성인용 콘텐츠를 첨가해 청소년에게 팔려는 생각은 버려도 될 때가 왔다. 이젠 시장의 수요구조가 최근에 선보인 MMORPG 온라인 게임처럼 떳떳하게 성인전용으로 나갈 수 있도록 변화했다. 미래지향적인 등급분류는 성인콘텐츠에 대해서는 더 과감하게 개방하고 청소년콘텐츠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성년자의 차별적 접근차단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법적 장치들이 필요하다. 문화콘텐츠의 윤리적 문제는 더이상 ‘의식개혁’이나 ‘사회적 책임’과 같은 애매한 구호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성인콘텐츠를 과감하게 개방, 성인시장을 인정해 줌으로써 오히려 성인에 적합한 내용을 미성년자에게 팔려는 문제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그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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